< 공동합의문 발표 >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25일 새벽 2시 청와대에서 남북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 공동합의문 발표 >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25일 새벽 2시 청와대에서 남북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남북이 전례없는 마라톤협상을 벌여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남북한 간 회담에서 밤샘협상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사흘째 정회를 거듭하며 협상을 이어간 것은 이례적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각각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 대표단은 지난 22일 오후 6시30분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첫 대화를 시작했다. 이튿날인 23일 오전 4시15분까지 밤을 새워 협상을 벌인 양측은 약 11시간 동안 정회한 뒤 같은날 오후 3시30분 접촉을 재개했다. 남북 대표단은 24일 밤 늦게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협상 재개와 정회를 이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회담에서 밤샘협상은 있어왔던 일이지만, 이번처럼 이틀 연속 밤을 새워가며 논의에 임한 사례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이 고위급 협상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대리전이라는 점이 마라톤협상의 중요한 원인이다. 남북회담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남북 간 회담은 현장에 마련된 폐쇄회로TV(CCTV) 전용선을 통해 서울로 실시간 중계됐다. 양측 대표는 모두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지침을 받고 협상에 나섰다. 남북 대표들이 각각 지침을 전달받을 때마다 정회를 하는 바람에 협상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현장의 재량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우리 측은 CCTV 모니터링을 통해 협상을 지켜보면서 대표단의 작은 몸짓이나 눈빛, 단어 선택까지도 협상전략 차원에서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단이 평양에 직접 대면보고를 다녀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회담 시 최고수준의 결정이 필요한 경우 평양에서 직접 대면보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회담이 길어지는 것으로 보아 북측 대표단이 한 차례 정도 평양을 다녀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회담이 열리고 있는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육로로 왕복 세 시간가량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회와 재개를 거듭하는 이면에는 북측의 대면보고가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밀도 있는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기 위해 김 안보실장과 황 총정치국장 간 1 대 1 수석대표 접촉은 협상장이 아닌 평화의 집 별도 공간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데서 이유를 찾았다. 이번 회담은 남북의 안보 컨트롤타워인 김 안보실장과 황 총정치국장, 남북관계를 관장하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대표로 나섰다. 보통 남북 간 고위급 회담은 사전에 실무접촉을 통해 테이블에 올라갈 의제를 정리한다.

하지만 이번 접촉은 북측의 포격 도발과 대응 포격, 김정은의 준전시상태 선포 등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성사되면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회담 현장에서 김 안보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이 남북 간 현안과 실무를 하나하나 풀어가야 했다.

남북 간 극한 긴장상태에서 어렵사리 마련된 대화의 판을 이어가겠다는 뜻도 회담이 길어진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전례없는 마라톤협상은 ‘결렬’을 피하겠다는 양측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