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본분을 잊은 사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직분에 충실하고 있는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는 능력은 갖추고 있는가. 지금 한국의 문제는 이런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빚어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자.

군(軍)의 교전수칙은 일반적인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 뿐, 미리 예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전장(戰場)에 임해서 판단하고 대응하는 사람은 현장 지휘관이다. 연평해전은 경직된 교전수칙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 상황에 대응해야 할 현장 지휘관의 작전권을 크게 제한해 피해를 키웠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현장 사정을 잘 모르는 조정의 지휘에 따랐더라면 조선은 아마 그때 일본에 합병됐을지도 모른다. 현장 사정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상급 부서의 과도한 개입 사례다.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개입은 진즉 도(度)를 넘은 상태다. 교육부는 각종 지표를 만들어 대학을 평가하고 예산 배정의 자료로 활용한다. 이를테면 영어 강의는 국제화 지표의 한 요소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대부분 교수와 학생들이 영어로 주고받는 수업 내용이 알차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원의 학습 수준을 높이려고 교육부가 수년째 지원하는 두뇌한국21(BK21)의 성과도 그저 그렇다는 판단이다. 교수 연구 평가도 단기적인 양적 평가에 치중하다 보니 긴 호흡의 연구는 뒷전으로 사라지고 판에 박은 연구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대학에 중점연구소를 지정해 ‘사회적 경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연구비가 필요한 교수들은 이를 정당화하는 연구보고서를 쓰기 위해 무더운 날씨에도 엇나간 연구에 열심이다. 교육부의 과도한 개입에서 빚어진 사례들이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창조가 대학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잘 알 수 없는 교육부 관료들이 책상머리에서 짜낸 계획으로는 창조가 이뤄질 수 없다. 창조는 개개인의 영혼이 자유로울 때 가능한 것이다.

국립대학 총장들은 예산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이렇다 할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도 못하고 평가지표에 매달려 있다. 국립대학의 제반 운영 문제를 협의하는 국립대학총장협의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단언컨대 교육부가 요구하는 지표에 매달려봐야 대한민국의 학문 발전에 역행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교육부의 과도한 간섭으로 운신 폭이 좁다는 사실과 자리를 걸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총장들의 깊은 성찰이 따르지 못한 결과다.

국회로 넘어가면 문제는 원천적으로 더욱 심각해진다. 원천적이라는 말은 국회가 입법으로써 사회 질서의 왜곡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국회는 법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이며, 법의 속성은 어떠해야 하며, 또 그에 따른 입법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들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조직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이 무엇이 나라를 위한 진정한 지식이며, 무엇이 표(票)만을 겨냥한 거짓 지식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회 무용론’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좌든 우든, 시민단체들도 이제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들의 이해(利害)와 이른바 진영 논리를 앞세워 거의 모든 사회 문제에 천방지축으로 개입하기에 앞서, 차분하고 엄정하게 짜인 논리로 한국 사회의 발전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지적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건전한 시민단체로서의 존재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이익단체로 전락할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그동안 우리는 창조, 근면, 자조(自助)의 건강한 정신으로 과거의 헐벗고 굶주린 삶에서 벗어나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다. 지금은 더욱 더 밝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직분에 걸맞은 능력을 키우고 실천할 수 있는 자세를 다잡아야 할 때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