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한 부산대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7일 총장직선제 폐지에 반대하며 대학 본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유서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고 적었다.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 내성적 성격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다고 동료 교수들은 전했다.

/ 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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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학 이병운 교수(사진)에게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총장직선제가 중요한 것이냐”고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결기 어린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만큼 절망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상임회장을 지냈고 최근까지 부산대 교수회장을 맡았다. 총장직선제 논란에 가장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교수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당국이 꿈쩍도 않는 데 좌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교수회 간부도 아닌 평교수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그런 선택을 했다”고도 했다. 이어 “유족들과 논의했는데 총장 사퇴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 장관이 직접 조문 와서 법이 보장하는 총장 선출을 비롯한 대학 자율성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하라”고 요구했다.

- ‘희생이 필요하면 감당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절망했다는 건가.

“그렇다. 국교련 회장 때부터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상대로 온갖 소송을 걸었다. 국회에도 건의하고. 결과는 마이동풍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뭐라고 했나. 총장 선출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안 바뀐다. 이명박 정부 때 기조가 그대로다. 고 교수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이고 문학 전공자라 내성적인 분인데….”

- 고인과는 생전에 친분이 있었나.

“학과(국어교육과)는 다르지만 교류가 있었다. 종종 술자리도 함께 했다.”

- 주변에선 이런 사태를 예견했는지.

“정치적 판단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고 교수는 교수회 간부도 아닌 평교수다.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고 교수는) 교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대학의 자존심이나 민주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서울대가 법인화된 지금 부산대가 전국 40여개 국립대 맏형 격으로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 총장직선제 폐지가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인가.

“전 정부 때부터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유서를 보면 ‘무뎌졌다’는 표현이 몇 번이나 나온다. 이번처럼 최후의 선택이라도 하지 않으면 대학사회 구성원이나 일반인들이 민주화에 대한 절박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불행한 일이다. 고인은 이런 사태에 대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길 바랄 것이다.”

- 직선제가 폐지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총장에 전권을 주고, 교육 당국이 임명권을 가짐으로써 총장을 제어하면 대학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대학 외부에선 잘 모를 수 있다. 핵심은 직선제냐, 간선제냐가 아니다. 법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적 선택을 강압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이 문제다.”

- 직선제로 인한 파벌 등 부작용도 있다고 하는데.

“직선제에 결함이 있다면 보완할 수 있다. 논의해 법으로 바꾸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교수들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다. 다만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을 행정부가 임의로 무너뜨려선 안 된다. 간선제라고 문제가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로또 총장’을 낳는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직선제인데 대학의 수장을 로또식으로 뽑는 게 말이 되나.”

- 책임 지고 김기섭 총장이 물러났다. 직선제 폐지도 재검토한다고 했다.

“그렇게 알고 있다. 총장 사퇴, 직선제 원점에서 재논의로.”

-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직선제 총장을 교육부가 임용 제청 안 할 수 있다.

“어차피 당분간 총장 대행 체제로 가야 한다. 경북대 총장도 계속 공석 중이다. 다른 몇몇 국립대도 비슷한 상황이고. 지금 부산대 교수들로선 정부와 싸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느냐.”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 장관이 직접 문상을 와 법과 원칙대로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을 하라. 유족들과 그렇게 의견을 모았다. 법에서 보장된 걸 못하게 하는 건 법치주의가 아니다. 이주호 전 장관이 대학 자율로 총장직선제를 폐지했다고 강변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강도가 돈 내놔라 해서 내주면 그게 자율로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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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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