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인권교육법 추진'은 긍정 평가가 우세

6년 재임 동안에 숱한 논란을 빚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임기가 12일 끝난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내정한 직후부터 '자질 논란'에 휩싸인 현 위원장은 그동안 각종 구설에 휩싸이며 비판과 사퇴 압박을 받았다.

2012년 현 위원장의 연임이 논의될 때 여당조차 그의 흠을 문제 삼았지만, 정부의 밀어붙이기 덕에 인권위 최초로 연임한 최장기 위원장이 됐다.

그의 재임 기간에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 단체와 학계 등이 인권위에 매긴 점수는 낙제 수준이다.

독립기구로서 입지를 포기한 '잃어버린 6년'이라는 등의 평가가 주류였다.

북한인권 문제를 공론화한 사례 등은 보수진영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등으로 촉발된 인권위의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 시비가 줄어든 것도 그의 공적으로 꼽는다.

◇ "인권에 무지한 위원장"…임기 내내 논란·파행

현 위원장은 내정 단계부터 전문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법학자인 현 위원장이 인권과 관련한 연구 업적이나 활동 경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자질 논란'에 휩싸인 탓에 전임 안경환 위원장이 후임자를 위해 발판을 닦아 놓은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국 수행이 무산됐다.

ICC는 세계 인권기구를 대표하는 단체라는 점에서 한국이 '인권 선진국'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셈이다.

'반인권적 발언'이라는 비판도 수시로 나왔다.

취임 직후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여성 차별이 존재하느냐"고 말한 게 시발점이었다.

사법연수생 간담회에서는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됐다.

깜둥이도 같이 살고…"라는 표현을 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2009년 12월 용산 철거민 시위와 관련한 전체회의에서는 위원 간 의견이 갈리자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면서 회의를 서둘러 끝내기도 했다.

2010년 말에는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이 현 위원장 체제에 불만을 표출하며 동반 사퇴했다.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을 비롯한 60여명의 인권위 위촉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이 줄줄이 사퇴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9일 "당시 전문가 상당수가 이탈해 인권위가 뿌리까지 흔들렸고, 사명감으로 일하던 직원의 사기도 크게 꺾였다"면서 "이때 손실된 역량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병철 인권위'는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안건은 조사조차 하지 않아 '식물위원회'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용산참사', 'PD수첩 사건', '쌍용차 사태', '민간인 사찰' 등 민감한 사안들이 인권위 최고의결기구인 전원위에 상정되지 못하거나 기각되기 일쑤였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위는 사회적 현안을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에도 정치적·정략적인 차원에서 집권 여당의 유·불리만 판단하다가 6년을 보내버렸다"고 비판했다.

명숙 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인권침해 사건 조사를 회피하거나 면죄부를 주면서 인권기구로서 역할이 실종된 6년이었다"고 혹평했다.

◇ 위원장 연임 후에도 우여곡절

현 위원장이 논란 속에 임기 3년을 보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반대 여론에도 그의 연임을 강행했다.

당시 대다수 인권위 직원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한 설문 조사에서 90.7%가 "재임 기간 인권위가 각종 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인권위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인권위는 작년 3월 ICC 등급 심사에서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세계 120여개 국가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ICC는 5년마다 각국 인권기구의 활동이 '국가인권기구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 맞는지 판단해 등급을 매긴다.

인권위는 2004년 가입 당시 A등급을 받아 줄곧 유지했다.

전임 안경환 위원장 때는 부의장국을 지내며 ICC에서 독보적 위상을 자랑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차례나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이제는 벼랑 끝 처지가 됐다.

ICC 심사에서 B등급으로 강등되면 각종 투표권을 잃는다.

당시 ICC는 인권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 확보와 시민단체 참여 보장, 구성원 활동에 대한 면책조항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오창익 국장은 "ICC 평가에서 A등급은 70개국에 달한다"라며 "한국이 등급보류를 받을 정도라면 국제적 망신이자 치욕"이라고 말했다.

◇ 북한인권 거론에는 긍정평가 대두…후임에는 기대와 우려 교차

현 위원장은 재임 기간에 북한 인권 문제에 주력하는 듯했다.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진 북한 인권 문제를 공론화하자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찬사가 쏟아졌다.

현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북한인권팀을 신설했다.

북한주민과 국군포로ㆍ납북자, 이산가족 등 주요 이슈별로 '북한 인권 로드맵'을 마련해 정부에 권고도 했다.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와 북한인권기록관을 설치하며 북한의 인권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도 집중했다.

박경서 유엔 초대인권대사는 "북한인권문제 관련 센터와 기록관을 세우고 군 인권문제를 위한 군 교육 등을 강조한 것은 훌륭했다"고 호평했다.

김형완 소장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북한인권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실효성 있게 추진해야 했는데, 정치적인 코드 맞추기에 치우쳤다"고 되레 비판한 것이다.

입법에는 실패했지만, 학교와 공공기관 등에서 인권교육을 의무화하는 '인권교육법' 제정을 추진한 것을 두고도 긍정론이 적잖다.

이 법 제정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처음 정부입법으로 추진됐지만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다.

작년 10월 의원입법으로 재추진했지만 이번엔 보수 기독교 단체 측에서 "인권교육에 동성애 차별 금지가 들어갈 것"이라며 반발해 입법이 철회됐다.

현 위원장은 지난달 한 강연에서 재임 기간에 역점을 둔 과제로 북한인권과 인권교육법 제정 추진을 꼽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에 끊이지 않았던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 시비가 많이 줄어든 것도 현 위원장의 공로로 꼽는 이들이 많다.

현 위원장 취임 이전에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 사형제 폐지 등을 권고함으로써 찬반 세력 간 갈등이 증폭됐다.

탈북자와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도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후임 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내정된 것을 놓고는 우려가 기대가 교차한다.

오창익 국장은 "인권위원장에게는 법률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질이 요구된다"며 "실정법이 아닌 자연법 차원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인권 문제의 호민관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인권보호의 보루가 되려면 법과 양심을 중시하는 법조인이 수장을 맡는 게 적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토대로 인권 문제를 다루기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외부 공개가 힘든 군부대, 경찰서, 교도소 등의 인권 침해의 실상을 파헤치고,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의 인권에 더 큰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은 좌우 진영의 공통된 요구다.

인권위 위원·직원 사이의 성향 차이로 생긴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는 작업도 이 내정자의 몫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