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지난 27일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의 곁을 단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킨 사람은 맏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다. 아버지의 일본행 출국길과 귀국길에 모두 동행한 것은 물론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머물고 있는 신 총괄회장을 돌보고 있다.

신 이사장이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반대편에 서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연합전선’을 구축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신 이사장은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아버지의 집무실을 지키며 이인원 롯데 부회장 등 롯데그룹 고위 임원의 접근을 모두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은 30일 언론 인터뷰에서 “누나(신 이사장)는 어느 편도 아닌 중립”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이 롯데의 성장 과정에서 적잖은 기여를 했지만, 신 회장이 실권을 잡은 뒤 순식간에 밀려나 섭섭하게 여긴다”는 얘기가 많다.

신 회장은 2000년대 후반까지 신 이사장 집에서 치러진 고 노순화 여사의 제사를 제주(祭主)로서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 이사장과 신 회장의 소원해진 관계를 더욱 착잡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한국에 자리 잡은 뒤 한동안 노 여사의 제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며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졌고 이젠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한 뒤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에 참여하는 등 30년 넘게 경영 일선에서 활동했다. 2005년 문을 연 롯데백화점의 최고급 명품관 ‘에비뉴엘’도 신 이사장의 작품이다.

하지만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을 앞두고 신 이사장은 ‘이사 수 초과’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2년간 등기이사에서 빠지기도 했다. 신 회장이 주도권을 잡아가던 2012년에는 롯데쇼핑 사장직에서 물러나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사회공헌활동만 맡고 있다. 둘째 딸 장선윤 롯데호텔 상무(45) 역시 에비뉴엘 개관을 전후로 경영에 적극 참여했으나 2008년 손을 뗀 뒤 지난해 10월 롯데호텔로 복귀했다.

신 이사장은 “총괄회장의 귀를 틀어잡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부친의 각별한 애정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 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롯데쇼핑(0.74%) 롯데제과(2.52%) 롯데칠성음료(2.66%) 등 소량이지만 계열사 지분도 두루 갖고 있다. 동주·동빈 형제간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