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다고 공시한 뒤 삼성그룹은 전쟁 같은 44일을 보냈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여부가 막판까지 결정되지 않으면서 삼성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엘리엇 측도 폴 싱어 회장이 직접 나서 여론전을 벌이는 등 양측은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 긴박했던 44일
선공은 엘리엇 몫이었다. 1 대 0.35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식교환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면서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정관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소송전도 불사했다. 법원에 삼성물산을 상대로 합병 주주총회 통지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합병 시도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삼성도 반격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6월10일 자사주 5.76%를 KCC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엘리엇은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해 위법 소지가 있다”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맞섰다.

6월19일 첫 공판이 열렸다. 엘리엇 측은 “삼성 오너가가 삼성전자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려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엘리엇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삼성물산을 껍데기로 만들려는 악의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엘리엇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양측 공방이 가열되던 6월25일 국민연금이 SK(주)와 SK C&C의 합병을 반대하면서 삼성에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비슷한 논리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6월30일 긴급 기업설명회(IR)를 열어 거버넌스위원회 신설 등 주주친화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합병에 반대의견을 내면서 다시 한번 삼성은 긴장에 휩싸였다.

10일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승부의 추는 조금씩 삼성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주총을 나흘 앞둔 13일 대대적으로 신문광고를 내고 “주식 단 한 주라도 위임해달라”고 소액주주에게 호소했다. 싱어 회장도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방문했던 사진까지 공개하며 여론전을 폈지만 결국 승부는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