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 삼성마저 '44일 올스톱'…한국기업, 투기자본 막을 '방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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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과 공방이 남긴 숙제
경영권 방어 손발 묶인 한국 대표 기업들
투기자본, 중국·일본 기업 놔두고 한국에 공세 집중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도입 목소리 높아져
경영권 방어 손발 묶인 한국 대표 기업들
투기자본, 중국·일본 기업 놔두고 한국에 공세 집중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도입 목소리 높아져
삼성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방은 취약한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제도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조차 헤지펀드 공격에 휘청이는 걸 본 다른 기업들은 행여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업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펼치기보다 기업지배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기회에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 엘리엇 막느라 급급
삼성물산 경영진은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선언한 지난달 4일 이후 44일간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서 사실상 손을 떼다시피 했다.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과 김신 상사부문 사장은 국내외 주주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 바이어와의 미팅을 취소하거나 줄줄이 연기했다. 6조5000억원짜리 호주 로이힐광산 개발 등 매달 진행해오던 국내외 주요 프로젝트 현장 점검도 미뤘다.
주주총회 직전에는 고위 임원과 부·차장급, 사원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직원이 소액주주에게서 위임장을 받으러 다녔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사실상 경영 활동이 올스톱된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간판기업들도 언제든지 이런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주주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삼성 측 대주주 지분은 17.64%인 반면 외국인 지분은 51.8%에 이른다. 현대자동차도 대주주 지분은 25.96%인 데 비해 외국인 지분은 44.65%에 달한다. ‘헤지펀드의 다음 공격대상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 중 중국과 일본에선 경영권 위협사례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한국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취약해 외국 투기자본의 천국 같은 나라가 됐다”고 지적했다.
○“차등의결권·포이즌필 필요”
국내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자사주 취득과 신주의 제3자 배정,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정도다. 하지만 자사주 취득 외의 다른 수단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주를 발행해 우호세력에 넘기는 제3자 배정이나 경영진을 해임할 때 표결 정족수를 강화하는 초다수결의제는 다른 주주가 법적 문제를 제기하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해 경영진이 물러날 때 거액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는 황금낙하산 제도는 고액연봉 논란으로 도입하기 쉽지 않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723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21개에 불과하다.
재계는 위법 논란이 있는 경영권 방어책을 다른 선진국처럼 법에 명문화하고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을 새로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등의결권은 최대주주 등에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지난해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미국 증시에 상장한 것도 미국에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상법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을 강제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1주 1의결권을 적용하는 기업이 31%에 불과하며, 네덜란드와 스웨덴도 이 비율이 각각 14%와 25%에 그친다.
미국이나 일본도 1주 1의결권이 원칙이지만 회사 정관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선 기존 경영진이 적대적 M&A를 당할 때 주총에서 지분율과 상관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도 운영한다.
적대적 M&A 시도에 대응해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지분을 살 수 있는 포이즌필 제도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2010년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국회에서 대기업 특혜논란에 밀려 폐기됐다.
■ 차등의결권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다른 주식보다 더 많은 수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허용하지만 한국은 ‘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삼성, 엘리엇 막느라 급급
삼성물산 경영진은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선언한 지난달 4일 이후 44일간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서 사실상 손을 떼다시피 했다.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과 김신 상사부문 사장은 국내외 주주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 바이어와의 미팅을 취소하거나 줄줄이 연기했다. 6조5000억원짜리 호주 로이힐광산 개발 등 매달 진행해오던 국내외 주요 프로젝트 현장 점검도 미뤘다.
주주총회 직전에는 고위 임원과 부·차장급, 사원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직원이 소액주주에게서 위임장을 받으러 다녔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사실상 경영 활동이 올스톱된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간판기업들도 언제든지 이런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주주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삼성 측 대주주 지분은 17.64%인 반면 외국인 지분은 51.8%에 이른다. 현대자동차도 대주주 지분은 25.96%인 데 비해 외국인 지분은 44.65%에 달한다. ‘헤지펀드의 다음 공격대상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 중 중국과 일본에선 경영권 위협사례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한국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취약해 외국 투기자본의 천국 같은 나라가 됐다”고 지적했다.
○“차등의결권·포이즌필 필요”
국내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자사주 취득과 신주의 제3자 배정,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정도다. 하지만 자사주 취득 외의 다른 수단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주를 발행해 우호세력에 넘기는 제3자 배정이나 경영진을 해임할 때 표결 정족수를 강화하는 초다수결의제는 다른 주주가 법적 문제를 제기하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해 경영진이 물러날 때 거액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는 황금낙하산 제도는 고액연봉 논란으로 도입하기 쉽지 않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723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21개에 불과하다.
재계는 위법 논란이 있는 경영권 방어책을 다른 선진국처럼 법에 명문화하고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을 새로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등의결권은 최대주주 등에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지난해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미국 증시에 상장한 것도 미국에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상법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을 강제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1주 1의결권을 적용하는 기업이 31%에 불과하며, 네덜란드와 스웨덴도 이 비율이 각각 14%와 25%에 그친다.
미국이나 일본도 1주 1의결권이 원칙이지만 회사 정관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선 기존 경영진이 적대적 M&A를 당할 때 주총에서 지분율과 상관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도 운영한다.
적대적 M&A 시도에 대응해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지분을 살 수 있는 포이즌필 제도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2010년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국회에서 대기업 특혜논란에 밀려 폐기됐다.
■ 차등의결권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다른 주식보다 더 많은 수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허용하지만 한국은 ‘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