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치는 블룸버그 사장> 마이클 블룸버그 블룸버그통신 사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 등 유대인 기업가들은 대부분 직원과 함께 앉아 근무한다. 소통하고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평등사상이 낳은 수평문화가 후츠파 정신이다. 블룸버그 사장(앞쪽 오른쪽)이 뉴욕시장 시절 한 공연에 참여한 모습.
<기타 치는 블룸버그 사장> 마이클 블룸버그 블룸버그통신 사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 등 유대인 기업가들은 대부분 직원과 함께 앉아 근무한다. 소통하고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평등사상이 낳은 수평문화가 후츠파 정신이다. 블룸버그 사장(앞쪽 오른쪽)이 뉴욕시장 시절 한 공연에 참여한 모습.
필자가 1996년 뉴욕무역관 부관장 시절 블룸버그통신 사장이던 마이클 블룸버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평사원과 똑같이 사무실 한쪽에 있는 그의 책상에서 우리 일행을 맞았다. 사장실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브리핑을 직접 하는 게 아닌가. 회사 곳곳의 견학도 직접 본인이 우리 일행을 안내하며 세심한 부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때의 놀라움은 필자가 유대인 역사를, 그들의 가치관을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다른 유대인 기업가도 대부분 직원들과 함께 앉아 근무한다. 직원과의 소통이 쉽다는 이유 외에도 업무에 솔선수범하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자기만 특별대우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일부 유대인 사장은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그들에겐 별도의 사장실도, 지정된 주차공간도 없다.

이런 평등사상이 낳은 수평문화가 바로 후츠파 정신이다. 유대인은 직장에서의 직책은 효율적인 업무 추진을 위한 역할 분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사람 간에 종속관계가 성립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영층과 신입사원 간에도 자유롭고 당당하게 질문하고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 기업가의 리더십은 바로 이런 소통문화, 수평문화를 이끄는 데서 나온다.

# 율법의 본질은 ‘정의와 평등’

홍익희 배재대 교수
홍익희 배재대 교수
유대인의 평등사상은 뿌리가 깊다. 모세 율법의 본질이 ‘정의와 평등’이다. ‘정의’는 고아나 과부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고 ‘평등’은 세상의 통치자는 하느님 한 분이며,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개념이다. 그 무렵 만인이 ‘평등’하다는 개념은 파격이었다. 모세 스스로 평등사상을 본보이기 위해 특별대우를 사양했다. 전쟁터에서 돌 위에 앉아 전쟁을 지휘할 때 참모들이 편안한 의자를 권했다. 그때 모세는 나만 특별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다. 이것이 후대 유대인에게도 강하게 각인됐다.

이런 율법의 평등사상은 즉각 정치제도에도 반영됐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은 역사상 유례 없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탄생시켰다. 열두 지파 자치제를 시행한 것이다. 야훼만을 통치자로 모시면서 모든 지파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정치제도였다. 유대인은 다른 나라와 달리 왕을 세우지 않았다. 지파 연맹은 판관(判官)을 선출했다. 흔히 지파 간 분쟁이 생기면 이를 ‘판가름’한다 해서 판관이라 불렀다. 이 같은 체제가 대략 200여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지파 연맹체가 오직 야훼 신앙으로 뭉치고 지파들 사이에 평등사회를 이뤘기 때문이다. 모든 지파는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 통치 이념이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평등 이념을 기초로 한 종교 공동체였다. 그들은 그리스보다 400년이나 앞서 민주주의 제도를 실천했다. 나중에 전쟁 통에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위해 왕을 뽑았다. 사울, 다윗, 솔로몬이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절대군주가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율법 아래, 곧 입헌군주제 아래의 대표자일 뿐이었다.

# 비전 제시에 강한 유대인 기업가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면서 종교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기독교도들은 다윈이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원숭이의 이미지로 훼손시켰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유대교에서는 진화를 단계별로 이뤄지는 또 하나의 창조로 해석한다. 유대교의 ‘티쿤 올람’ 사상에 따르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개선시켜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티쿤 올람’이란 유대교 신앙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로 ‘세계를 고친다’는 뜻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파트너로 세상을 개선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되는 신의 창조행위를 도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자 인간의 의무라는 설명이다. 이것이 유대인의 현대판 메시야 사상이다. 메시야란 어느날 세상을 구하기 위해 홀연히 나타나는 게 아니라 유대인 스스로가 신과 협력해 세상을 완성시키는 메시야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유대인이 창조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바로 이 사상 때문이다. 이는 또 유대 기업인이 자기 분야를 통해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과 비전 제시에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홍익희 < 배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