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덤보의 미소’ > 13일(한국시간) 제70회 US여자오픈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전인지가 경기를 마친 뒤 환호하는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덤보의 미소’ > 13일(한국시간) 제70회 US여자오픈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전인지가 경기를 마친 뒤 환호하는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여자골프 세계랭킹 10위, 상금 9억2000만원, 내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직행 티켓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전인지(21·하이트진로)가 세계 4대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전인지는 올 시즌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 것은 물론 세 국가의 메이저대회를 제패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한국 선수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전인지가 통산 여덟 번째(박인비는 2회 우승)다.

○살 떨리는 승부에서도 ‘미소’

전인지, US여자오픈 역전드라마…한·미·일 메이저 모두 우승
전인지는 13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CC(파70·6289야드)에서 열린 제70회 US여자오픈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에 보기 3개를 묶어 4언더파 66타를 쳤다. 합계 8언더파 272타를 기록한 전인지는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인 양희영(26·사진)을 1타 차로 제치고 처음 출전한 미국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골프선수들이 ‘꿈의 무대’라고 부르는 US여자오픈이지만 전인지의 강심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샷 실수를 하면 인상을 찌푸리기보다 싱긋 웃는 ‘덤보(전인지의 별명) 미소’도 여전했다. 베테랑 양희영과 스테이시 루이스(미국)가 오히려 큰 압박을 느끼는 듯했다. 사흘간 선두를 지켰던 양희영은 루틴을 수차례 반복하는 등 평정심을 잃은 모습이었다.

승부는 15번홀(파4)에서 뒤집혔다. 앞 조에서 경기를 치르던 전인지는 이 홀부터 17번홀까지 3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상승세를 탔다. 반면 챔피언조의 양희영과 루이스는 러프와 벙커를 전전하며 각각 보기와 더블보기를 기록, 역전을 허용했다. 전인지는 17번홀을 지날 때 미국 꼬마팬들과 밝게 웃으며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여유를 보였다.

막판 다시 힘을 낸 양희영이 마지막홀에서 파를 기록했다면 한국 선수끼리 연장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파세이브에 실패하면서 우승컵은 전인지의 품에 안겼다. 전인지는 US여자오픈에 처음 출전해 우승함으로써 1956년 캐시 코넬리우스, 2005년 김주연에 이어 세 번째 진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또 역대 챔피언 중 박인비 박세리에 이어 세 번째(만 21세9개월)로 어린 나이에 우승을 차지했다.

전인지는 이날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10계단 상승한 10위에 올랐다. 전인지는 “머릿속이 하얗다”며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무대에서 우승한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지애 캐디와 호흡 맞춰

2013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전인지는 첫해에 국내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5월에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 살롱파스컵에서 우승했다. 이어 두 달여 만에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US여자오픈을 제패, 올 시즌 3개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선수라도 3개국을 오가며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어서 전인지의 기록은 더 의미가 깊다. 전인지 이전에는 신지애(27)가 2008년 세 개 투어에서 우승했다.

당시 신지애의 캐디백을 들었던 캐디 딘 허든(미국)이 이번 전인지의 우승에 힘을 보탠 캐디라는 점도 흥미롭다. 허든은 서희경(29·하이트진로)의 캐디를 하고 있지만 이번 대회에 서희경이 출전하지 않아 전인지와 호흡을 맞췄다.

2008년, 2013년 우승자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막판 3타를 줄이며 추격했지만 퍼트 난조로 루이스와 함께 공동 3위(5언더파 275타)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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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LPGA 진출은 나의 꿈…다음 목표는 브리티시오픈”


“즐겁게 경기하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아직 우승이 실감 나지 않는다.”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13일(한국시간) 제70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대회 기간에 샷 감각이 좋아서 샷 미스를 하지 않은 게 우승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5번홀 버디를 잡은 이후 작전은.

“15번홀에선 나흘 내내 버디 기회가 왔다. 어제 버디를 기록해서 오늘도 기분 좋게 샷할 수 있었다. 16번홀에선 3번 우드를 잡을지, 드라이버를 잡을지 고민했다. 벙커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린을 놓치고 벙커에 들어가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드라이버를 들었다.”

▷처음 만난 캐디(딘 허든)는 어땠나.

“이전부터 알고 있던 캐디다. 한국 선수들과 친분이 있고 한국 선수들의 스타일을 잘 안다. 이번에는 연습 라운드부터 즐겁게 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희경 언니가 이번에 출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캐디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브리티시오픈에서도 이 캐디와 호흡을 맞출 것이다.”

▷미국무대 진출 계획은.

“부모님, 코치님과 상의해 보겠다. LPGA 진출은 나의 꿈이다.”

▷앞으로 계획은.

“한국에 돌아가서 두 개 대회에 참가한다. 브리티시오픈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영국은 처음 가 본다. 역사가 깊은 곳에서 경기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기쁘고 흥분된다. 늘 하던 대로 즐겁게 경기하고 오겠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