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에는 율곡비리로 구속…법원 "다툼의 여지있다"
검찰 "법원 판단 존중…보완수사 거쳐 영장 재청구 검토"

1천억원대 국외재산도피 등의 혐의를 받는 거물급 무기중개상 정의승(76)씨의 구속영장이 4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조윤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주요 범죄혐의 소명 정도와 그에 대한 법률·사실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정씨가 수사 개시 전에 국외재산 대부분을 국내로 반입한 점, 해외계좌 내역을 스스로 제출하는 등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점 등도 고려됐다.

정씨로서는 1993년 율곡비리 때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래 22년 만에 다시 철창신세를 지게 될 상황을 일단 모면하게 됐다.

하지만 정씨를 출발점으로 차세대 잠수함 도입과 관련해 군 수뇌부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려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합수단에 따르면 정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독일의 잠수함 건조업체 하데베(HDW)와 엔진제작업체 엠테우(MTU) 등 외국 방산업체로부터 받은 1천억원대 중개수수료를 홍콩 등지의 페이퍼컴퍼니 명의 계좌에 숨겨놓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합수단은 정씨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자금을 세탁해 국내로 들여온 뒤 차세대 잠수함 사업 등을 주도하는 군 고위층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썼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우리 해군이 차세대 잠수함으로 선택한 214급(1천800t급)은 HDW의 부품·설계기술에 MTU의 디젤엔진이 장착된다.

2019년까지 9척을 도입하는 이 사업에는 총 3조7천억여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잠항능력을 결정하는 연료전지와 통신장비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도 성능평가를 통과해 논란이 됐다.

합수단은 결함을 눈감아주거나 시운전 결과보고서를 조작한 전·현직 군 장교를 여럿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장교로 복무한 정씨는 1977년 전역한 뒤 독일의 육·해상 기동무기 엔진제작업체인 엠테우(MTU) 한국지사장으로 근무했고 1983년에는 학산실업(현 씨스텍코리아)을 설립에 직접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방산업계에서는 그를 '1세대 무기거래상'으로 꼽는다.

그는 1993년 한국군 전투력 증강을 위한 율곡사업 당시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3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보석으로 풀려난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정씨는 이후 재기에 성공해 유비엠텍이라는 또다른 무기중개업체를 설립하는 한편 209·214급 잠수함, 육군 K2 전차의 핵심부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 등을 중개하며 큰 수익을 올렸다.

합수단은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한 뒤 보완수사를 거쳐 정씨의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합수단 측은 "거액의 무기 중개 수수료 은닉과 탈세, 그 수익을 유지하기 위한 로비 등이 방위사업 비리의 출발점이자 본질인 것으로 확인된 만큼 출범 초기와 같은 자세로 한치의 흔들림 없이 수사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