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 주장에 국과수 감정결과 증거 제외…유죄는 못 벗어

"사람 머리카락이 한 달 평균 1㎝씩 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무죄입니다!"(변호인)
"피고인의 머리카락이 한 달에 0.8㎝씩 자랐다고 가정하면 피고인은 유죄입니다!"(검사)
서울법원종합청사 421호 법정에선 최근 진기한 공방이 벌어졌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를 놓고 변호인과 검사가 '한판 대결'을 벌인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조휴옥 부장판사)는 필로폰을 투약해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은 홍모(43)씨의 항소심에서 홍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0일 밝혔다.

홍씨는 2013년 6월 자택에서 물에 녹인 필로폰 0.1g을 일회용 주사기로 팔에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감정 결과 2014년 8월 채취한 홍씨의 머리카락에서 모근부터 12㎝까지 필로폰 성분 검출됐다며 홍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마약을 투약하면 그때부터 머리카락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기 때문에 홍씨의 투약 사실이 분명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홍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하고 유죄의 증거인 국과수 감정결과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월 1㎝씩 자라는 만큼 감정결과는 2013년 8월∼2014년 8월 사이의 투약 증거이지, 검사가 지목한 2013년 6월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사는 머리카락이 한 달에 0.8㎝∼1.3㎝가 자라기 때문에 홍씨의 머리카락이 월 0.8㎝씩 자랐다면 국과수 감정결과가 증거로서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홍씨의 머리카락이 한 달에 1.3㎝씩 자랐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며 홍씨의 바람대로 감정결과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홍씨의 동거인 이모씨가 1심 법정에서 필로폰 구매·투약 과정을 상세히 진술한 것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홍씨의 투약이 사실이라고 봤다.

또 홍씨가 이미 2011년 같은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점 등을 들어 1심과 같이 홍씨를 유죄로 판단했다.

홍씨는 이씨가 자신과 동거생활을 끝낸 뒤 법정에서 악감정을 갖고 진술했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bang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