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증시 랠리'를 보는 다른 시각
한국상공회의소(KOCHAM)가 주최한 글로벌 경제동향 세미나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월가의 한 대형은행 투자담당 부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한국은 항상 늦죠?”

글로벌 증시 랠리에 뒤늦게 동참한 한국 증시를 두고 한 말이다. 올해 세계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국가는 러시아다. 33%나 뛰었다. 더 이상 나빠질 이유가 없다는 바닥론을 믿고 연초부터 전 세계에서 투자금이 몰렸다.

유럽 증시의 대표지수인 유로스톡50은 20%가량 뛰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 완화에 나선 결과다. 상하이 증시는 26% 뛰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올랐다. 한국 증시는 가장 늦게 랠리에 합류해 10% 남짓 올랐다.

이 부사장은 “전 세계에 넘쳐나는 유동성 자금이 시장을 찾다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들어간 것”이라며 “빠져나올 시점을 정하고 들어간 돈”이라고 말했다. 빠져나가는 시점이 언제일까를 묻자 “미국에서 금리인상 신호가 나타나는 즉시”라고 답했다.

달러 강세(원화 약세)로 이어지는 미국의 금리인상은 한국 증시의 투자수익률을 끌어내리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날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은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되지 않을까. 그는 “지금 전 세계 증시는 유동성의 힘에 밀려 올라갔지 펀더멘털이 탄탄해서 오른 게 아니다”고 말했다.

2013년 9월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테이퍼링(점진적 양적 완화 축소)’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자 전 세계 주요 증시는 10% 이상 폭락했다. 금리를 올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돈을 푸는 속도를 조금씩 줄이겠다고 했을 뿐인데도 시장은 발작증세를 보였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위기가 터지기 전에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럴까요? 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이닥치기 때문에 위기 아닌가요.” 뒤늦은 한국 증시 랠리에 마음이 들썩이는 투자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지적이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