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윤수 회장은 “자본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은 도전정신”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해외 우량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윤윤수 회장은 “자본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은 도전정신”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해외 우량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윤윤수 휠라 회장(아큐시네트 회장)은 평범한 직장인에서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겸 최대주주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세계 30여개국에 1만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휠라를 인수한 지 4년 만에 세계 1위 골프용품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도 품에 안았다. 한국 지사장으로서 휠라 본사를 인수하고, 사모펀드(PEF) 공동 인수 방식으로 아큐시네트를 사들이는 등 그의 글로벌 기업 인수 행보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윤 회장이 써내려가는 ‘샐러리맨 신화’에 올해 새로운 장이 열릴 것 같다. 미국 뉴욕증시에 타이틀리스트 골프공과 풋조이 신발, 장갑 등 골프용품을 만드는 아큐시네트 상장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인수금액만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회사를 사들일 구상도 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휠라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윤 회장은 “기업가의 업(業)은 계속 도전하는 것”이라며 “경영을 그만둘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큐시네트를 인수한 지 3년8개월이 됐습니다. 실적이 궁금합니다.

“지난해 휠라는 1조3000억원, 아큐시네트는 1조6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성적은 기대 이상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스포츠 브랜드 시장은 불황이에요. 휠라코리아 실적이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2000년 매출이 5000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4500억원에 그쳤죠.”

▷해외로 눈을 돌린 게 맞아떨어졌네요.

“그렇죠. 인수하기 전 휠라는 세계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죠. 휠라코리아만 세계 각국의 휠라 법인 가운데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래서 휠라 본사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우려하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장사가 잘 되니까 글로벌 시장을 쉽게 본다’는 것이었죠. 세계 시장에서 싸울 전략을 갖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말에 굴복해 휠라코리아만 경영했다면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아큐시네트의 수익성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기업공개(IPO) 절차를 밟고 있어 수치를 자세하게 밝히기는 어렵습니다만 2011년 인수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공동 투자자와 약속한 수익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당시 1억2000만달러였던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을 2015년까지 5년 안에 두 배 이상 늘리기로 약속했었죠.”

▷골프공(타이틀리스트)이나 골프화(풋조이) 점유율은 어떤가요.

“세계 시장에서 골프공은 60~65%, 풋조이 장갑은 70~75%, 풋조이 신발은 51%를 각각 점유하고 있습니다. 개별 상품이 모두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놀라운 현상입니다. 연간 변동폭이 1~2%포인트에 불과할 정도로 탄탄합니다.”

▷세계 1위를 지키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아큐시네트는 모든 제품을 100% 자체 생산합니다. 브랜드와 품질을 최우선시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브랜드 가치에 대해서는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아큐시네트를 인수하고 나서 제게 라이선스 사업을 제안한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담당자에게 소개해줬는데 단번에 거절하더군요. (웃으며) 회장인 제가 소개했는데도 말이죠. 품질을 지키겠다는 주인의식이 있는 것을 확인하니 무조건 이 회사는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큐시네트 인수 당시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압니다.

“중국 시장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후 본격화한 반(反)부패 개혁이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법적으로 지은 골프장을 폐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국 시장이 커진다는 확신엔 변함이 없습니다. 중국 언론들이 골프를 ‘녹색아편’이라 부를 정도로 시장 확대 속도가 빠르죠.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아큐시네트의 유통망을 갖출 계획입니다.”

▷해외 기업 인수 경험이 풍부한데 비결이 따로 있나요.

“휠라와 아큐시네트 외에도 3~4곳의 해외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해외 기업 인수가 성공하려면 일단 해당 분야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저와 휠라USA 사장을 비롯해 4명의 핵심 임원이 전담 팀을 짜 모든 협상에 들어갑니다. 인수 후에도 그 회사가 한국 기업이 아닌 해당 국가 기업, 나아가 글로벌 기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기업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인수 후 통합(PMI)의 시작점입니다.”

▷아큐시네트는 기업과 PEF가 협력해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한 모범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유정헌 미래에셋자산운용 PEF 대표가 세 차례나 찾아와 설득했습니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아큐시네트는 없을 것입니다. 유 대표는 2007년 휠라 본사를 인수할 때도 재무적 투자자(FI)로 관계를 맺었습니다. 실력 있는 FI들이 기업과 함께 해외에 진출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해외 기업 인수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중국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을 많이 사냥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낮은 자금조달 금리를 활용해 해외에서 막대한 실탄을 뿌리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도 두려워하지 말고 해외 기업을 사들여야 합니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글로벌 우량 기업을 품는 것은 당장 몇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지름길 아닙니까.”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주저하는 이유는 뭔가요.

“외국어, M&A 협상 실력, 사업 경험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입니다. 아큐시네트 인수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면서 휠라 주식을 모두 담보로 맡겼습니다.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휠라 주식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잘못되면 휠라까지 잃는 거군요.

“기업인이라면 그 정도의 도전 정신은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자본주의 맹점은 빈익빈 부익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탓하고 있으면 바뀌는 게 없습니다. 자본주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도전 정신입니다.”

▷아큐시네트 상장 후 계획이 있습니까.

“은퇴하기 전에 한 차례 더 기업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20억~30억달러 규모의 기업이 있는데 아직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입니다. (웃으면서) 아큐시네트 IPO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기업 인수를 추진하기 어려운 제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부모들은 자식에게 리스크를 짊어지게 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식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어릴 때부터 도전 정신을 키워야죠.”

[월요인터뷰] 윤윤수 휠라 회장 "中·日은 해외 브랜드 사재기 중…한국기업도 빨리 해외로 눈돌려야"
윤윤수 회장은…

윤윤수 회장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1945년 경기 화성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백일 때와 고등학교 2학년에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를 병으로 여의었다. 서울대 의예과에 들어가기 위해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실패한 뒤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졸업 후 해운공사(현 한진해운)와 신발 제조업체 화승 등을 거치며 글로벌 감각을 키운 뒤 개인회사를 차려 수출 업무를 했고, 이때 휠라와 인연을 맺었다. 2005년 휠라의 한국법인을 본사로부터 사들인 뒤 2007년 본사 경영권까지 인수했다. 70세인 그는 “80세를 넘겨서도 은퇴하지 않고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할 만큼 열정이 넘친다.

△1945년 경기 화성 출생 △서울고,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해운공사(현 한진해운) 입사 △화승 수출 담당 이사 △대운무역 사장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회장 △글로벌휠라 대표이사 회장 △아큐시네트 회장 /

좌동욱/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