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판매원 결격사유 대통령령 규정…직업의 자유 제한 소지 커
법제처가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 법령들은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명확한 법률적 근거가 없거나 행정기관의 재량에 맡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행정기관들이 손쉬운 입법을 위해 의원에게 의뢰한 청부입법이 크게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법안의 숫자는 급증한 반면 질적인 수준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법령, 기업·개인의 경제활동 위축

최근 법제처가 발간한 ‘법령의 헌법 합치성 제고를 위한 정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정비 권고 대상 법 조항은 총 121개다. 이 중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어긋나는 법령이 72건으로 59.5%를 차지했다. 포괄위임금지 원칙 위반 조항도 22건(18.2%)으로 뒤를 이었다. 법률상 뚜렷한 근거 없이 행정기관 재량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령들이 대다수라는 의미다.

예컨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15조 2항은 다단계 판매원의 등록 결격 사유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했다. 이는 직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제대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 법제처 판단이다. 위생사 시험에 응시하는 자에게 수수료 납부 의무를 부과한 위생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도 “금전 부담 의무는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개정을 권고했다.

위헌 소지 법령에는 명확하지 않은 용어로 경제 활동을 저해할 수 있는 조항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업무를 부당하게 수행하거나 도매시장 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 농수산물 경매사의 업무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도 손질 대상이다. 유선 및 도선 사업법 제12조 제5항은 승선 금지 대상자를 ‘말이나 행동이 수상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고 애매하게 명시한 것 역시 정비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됐다.

중소기업의 활동을 저해하는 법안도 과제로 꼽혀 정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은 창업기업이 ‘아이디어의 도용 등 부정 방법으로 선정된 때’ 아이디어 사업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법 시행령에 사업화 수행이 지연되거나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경우 등 사유를 추가해 위헌 소지를 안고 있어 최근 상위 법령을 개정했다.

이 밖에 △국제결혼중개업 자본금 보유기준 위임범위 구체화 △임용시험·간호조무사 자격시험 부정행위자에 대한 응시제한 근거를 법률에 규정 △압류재산에 대한 체납처분 집행 시 그 압류재산에 관하여 제3자가 가진 권리 침해를 최소화 △기술지주회사 변경등록 통보 의무 관련 법률상 근거 마련 등이 주요 정비과제로 꼽혔다.

앞서 한국법제연구원은 국민연금법·민법·사면법·세법 등 분야 법 조항에도 위헌성이 있다고 지적했으나 법제처 내부 검토 결과 개정 대상으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청부입법, 정부의 밥그릇 키우는 통로

이같이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이 양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원입법이 폭증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의원입법은 정부 입법과 달리 부처 협의, 입법예고 및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의 규제 심사 절차가 없기 때문에 정부의 청부입법 창구로 활용되기 일쑤다. 특히 청부입법의 경우 시행령 등 하위 법령에 포괄 위임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위헌 소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홍완식 한국입법학회 회장(건국대 로스쿨 교수)은 “정부가 국회의원들에게 입법을 떠넘기는 것은 국회의 전문성 부족이나 정당 간 이견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며 “국민의 대표자가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위헌 여부 판단을 받으려면 개별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하고 사회적 비효율이 초래된다”며 “앞으로도 선제적으로 위헌 우려가 있는 법령을 고쳐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