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였다. 그룹의 지주사격인 금호산업이 다른 기업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매각방침에 따라 현재 입찰이 진행중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2일 입찰적격자로 호반건설, MBK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컨소시엄, IMM PE, 자베즈파트너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던 신세계가 입찰포기의사를 밝히면서 5파전으로 압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5개 업체는 9일부터 5주간 금호산업에 대한 예비실사를 진행한 뒤 인수가격과 자금조달 계획서 등을 담은 본입찰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4월께 이들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본격 매각절차를 밟게된다.

금호산업이 매각되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터미널 등 타이어를 뺀 그룹사들이통채로넘어가게된다. 같이 시장에 나온 그룹의 금호고속을 다시 사들이는 일도 험난하다. 금호산업과 고속을 다시 사들이기 위해서는 1조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높은 인수액과 금호산업의 현금 동원력 때문에 금호측이 이들을 한꺼번에 인수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인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지역민들의 심정은 착찹하다. 금호는 오랜기간 지역민들에겐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역민들의 금호고속 사랑은 그동안 유별났다. 타지역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도 몇시간씩 기다렸다 기어이 금호고속만을 타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J프로젝트 등의 대형개발사업이나 여수세계박람회 F1대회 등 대형행사를 치를 때마다 지역에서 도움을 청했던 단골기업이 금호였다. 심지어 축구 야구 농구 등 프로구단의 부재시에도 금호가 창단하거나 인수해야 한다며 은근한 압박을 넣곤 했다. 그룹사 매각절차가 진행중인 최근에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광주FC가 대기업 스폰서십을 맺겠다며 1순위로 거론한 업체가 금호였다. 사익을 추구하는 호남 기업 중에서도 금호만큼은 지역민들에겐 ‘공적 기업’으로 인식되어왔다. 산업기반이 빈약한 호남에서는 금호말고는 ‘비빌 언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지난해 2조 3천 5백여억원의 매출을 올려 220억원 이상을 지방세로 납부했다. 또 호남출신자 채용을 꺼리는 여느기업과 달리 지역에서만5천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의 인건비만 연 3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도급 및 파견직원 1천 5백여명에게 연간 7백억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협력업체 720여곳에 90여억원어치를 구매하고 있다. 각종 성금과 기부금 등 지역발전 명목으로 쓰는 금액도 12억원에 이른다. 국제금융위기 여파로 유동성위기를 맞기전인 2009년에 비해 고용인원과 지방세 납부액은 절반이하로 줄고 지역내 사회공헌기부협찬금도 1/3이상 줄어들었지만 금호는 변함없는 지역의 든든한 후원자역할을 하고 있다.

금호산업과 고속이 넘어가면 이런 혜택은 사라지게 된다. 지역으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인수한다해도 그룹은 산산조각으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과거 대한화재를 인수했다 다시 토해낸 대주그룹 등의 ‘새우가 고래를 삼킨’ 인수사례 대부분이 불행하게 막을 내린 점을 볼 때 “과연 호반이 향후 금호그룹을 안정적으로 경영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에도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해마다 기업유치에 올인하면서기업에 유치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 기업유치 보조금으로 유치기업 14곳에 70억원의 보조금을 줬다. 기업당 5억원 가량이다. 전남도도 민선6기동안 1,000개 기업 유치를 목표로 올해부터 연간 10억원 수준의 투자기업 보조금을 6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인센티브를 쓰고도 금호아시아나그룹만한 덩치가 큰 기업을 유치하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다. 금호가 공중분해되면그동안 누렸던 수혜도 사라지게된다. 그런데도 이들 지자체들은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문 채 요즘 금호사태를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실질보다는 실적에만 매달린 전시행정의 한단면이 아닌가싶다. 지역경제계 한 관계자는 “금호가 공중분해된다면 지역으로선 큰 손실이 분명하다”며 “금호그룹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다질 수 있도록 지역차원에서도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