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보편적 징세 vs 선별적 복지
한 나라의 조세제도는 복지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복지와 증세 논쟁은 이 두 제도의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진통이다. 복지제도와 조세제도는 각 나라의 전통 가치관을 반영한다. 개인주의적 전통이 강한 미국의 복지제도는 선별적이고 자기책임이 기본이다. 그 대신 미국의 조세제도는 누진세와 보조금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추구한다.

반면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국가가 의료, 육아,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국민의 보편적인 기본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에서는 복지제도에 대해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부담을 져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복지부담은 병역 의무와 같은 보편적 의무다. 그래서 서유럽 국가에서는 유류세나 부가가치세 같은 보편적 세금은 세율이 매우 높다. 소비세는 저소득층에 불리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국가들의 부가가치세율은 대부분 20% 이상이다.

지금 한국은 서유럽의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면서 보편적이지 않은 조세제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조세제도는 상위 10% 소득층이 소득세의 70% 이상을 부담하고, 1%의 기업이 법인세의 80% 이상을 내는 매우 보편적이지 않은 편향된 조세부담구조를 가지고 있다. 근로자의 3분의 1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 이런 구조를 두고 고소득자와 기업으로부터 얼마나 더 세금을 거둘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일부 정치인은 부족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소득자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세율을 올리는 것은 효과적인 증세 수단이 아니다. 표적 과세는 항상 과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세금 회피 행동을 유발한다. 고소득자는 일을 덜 하고, 기업은 생산 활동을 축소할 것이다. 아니면 면세나 공제제도를 더 많이 활용하려 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이 증세에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던 이유다.

법인세를 기업주에 대한 과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인세 부담은 기업주가 지는 것이 아니다. 법인은 자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인 소득은 궁극적으로 기업 활동에 참여한 자연인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분배된다. 따라서 법인세를 인상하면 결국 세 부담은 주주, 임직원, 협력업체,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분담된다. 그 과정에서 배당이 줄어 주가는 하락하고, 고용과 국내투자는 위축돼 일자리는 줄어들고, 제품가격은 인상될 것이다. 법인세 인상이 증세효과는 별로 없이 부작용만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다. 이에 비해 소비세는 경제활동에 대한 왜곡이 작아서 세금수입 증가에 효과적이다. 한국의 부가세율을 2%포인트 올리면 연 15조원의 증세가 가능하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의 복지는 다수로부터 걷어 소수에게 몰아주는 것이 돼야 한다. 소수로부터 걷어 다수에게 나눠주는 재분배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계층 간 갈등을 초래, 사회통합을 위해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국민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빈곤 해소에 더 효과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 가치관에도 맞는다. 지금과 같이 경제가 침체된 상태에서 증세를 하는 것은 경제를 더욱 침체시켜 오히려 세금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최선의 방법은 경제를 활성화해서 자연스럽게 세수가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세를 해야만 한다면 투자나 고용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세금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부 정치인이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로 복지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이 또한 얼마 못 가 국민에게 그것이 불가능함을 고백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세금도 보편적으로 거둬야 한다. 보편적 징세를 할 자신이 없으면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 이것이 복지와 증세의 불편한 진실이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 경제학 kim0032@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