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일본경제포럼에서 강연하는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대학원장. / 변성현 기자
30일 일본경제포럼에서 강연하는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대학원장. / 변성현 기자
“기업 간 관계에서 갑(甲)이 누구인지에 집중하는 순간 디플레이션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의 경우 제품 판매시스템에서 과점 메이커와 대형 소매기업 간 대립이 실패를 불렀어요. 기업 간 파워게임에 매몰돼 소비자 니즈(needs)가 뒷전이 되면 안 됩니다.”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대학원장(사진)은 30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제4회 일본경제포럼에 발표자로 나서 이 같이 말했다.

일본 현지에서 교수로 강단에 서는 최 원장은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근본 원인으로 소비자 니즈와 멀어진 점을 꼽았다.

그는 “업계 과당경쟁이 이어지면서 기업 조직이 비대해지고 관료주의적으로 변질됐다”며 “기업이 근본인 소비자에 충실하지 않다 보니 수익을 못 내고, 가격경쟁에 빠지면서 디플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일본의 장기침체와 디플레 불황 원인 중 하나로 일본의 제품 판매시스템을 들었다.

파나소닉의 전신인 마츠시타전기와 다이에의 ‘30년 전쟁’이 대표적 사례다. 1964년 대형 소매기업 다이에가 마츠시타 제품 가격을 인하해 판매하자 과점 브랜드였던 마츠시타가 출시 정지로 대응하면서 대립이 시작됐다. 이후 30년 가까이 양사의 대립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정작 소비자 니즈는 외면됐다는 것.

최 원장은 “상인정신을 망각하고 저가경쟁과 리베이트에 안주해 디플레가 심화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한 뒤 “잃어버린 20년을 지나며 혁신적 소매기업들은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코디네이터이자 ‘BEST’(브랜드·엔터테인먼트·공급망관리·타깃팅) 비즈니스모델로 진화 중이다. 핵심은 소비자 니즈를 자극할 수 있는 매력적 제품을 만들어내 마케팅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일본 기업들의 대응은 ‘닮은꼴 불황기’를 맞게 될 국내 기업들에게도 유용한 참고 사례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원장은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디플레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는 한편 잃어버린 20년 동안 살아남은 생존전략을 벤치마킹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관건은 기업·업종 간 경쟁이 아닌 소비자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립적·경쟁적 관계에서 벗어나 파트너십을 갖고 소비자 니즈를 좇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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