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전형적인 꼬리 위험…'스위스發 프랑코겟돈'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지난 3년 동안 유지해 왔던 ‘최저환율제’를 포기했다.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단행된 만큼 초기 충격은 의외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도 코스피지수 1900선이 재차 붕괴됐다. 벌써부터 ‘프랑코겟돈(스위스 프랑화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앞으로 닥칠 파장이 우려된다.

SNB가 자신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이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환율제를 포기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고평가 압력에 시달려 왔던 스위스프랑화가 곧이어 터진 유럽 재정위기로 더 절상될 조짐을 보이자 자국 수출과 경기에 미칠 충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1유로=1.20 스위스프랑화’로 고정하는 일종의 페그제인 최저환율제를 도입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전형적인 꼬리 위험…'스위스發 프랑코겟돈'
최저환율제는 한국에서도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했던 ‘최저 가격제’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정 연도에 배추가 풍작을 거둬 시장에 맡겨 놓으면 배추 값이 폭락하고 농민은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균형가격보다 높게 최저 가격을 설정한다. 이 경우 당연히 농민은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배추를 사들여야 하는 정부는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위적인 자원 배분 기능을 갖고 있는 최저 가격제를 단기간 사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자체가 ‘정부의 실패’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면 암시장이 형성되고, 2차적으로 배추 공급은 늘고 배추 수요는 줄어 최저 가격 유지를 위한 정부의 재정부담은 더 증가하게 된다. SNB가 최저환율제를 포기한 것도 늘어나는 유로화 매입 부담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3년이란 비교적 긴 기간 최저환율제를 운용한 만큼 포기 이후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직접적인 충격은 스위스 수출과 경기에 미치는 부담이다. 최저환율제 시행 이후 저평가 압력이 누적돼온 스위스프랑화 가치가 이번 조치를 계기로 단기간에 빠르게 절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환차익을 겨냥한 투기성 각종 캐리자금의 유입도 확실시된다. 이런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SNB가 스위스로 유입되는 외국 자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확대하는 대내외 예금금리 차별화 정책을 함께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처럼 저금리 시대에는 금리 차보다 환차익이 국제 간 자금 흐름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쳐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는 명암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환율제 포기 이후 유로화 약세가 더 빨리 진행된다면 유로 수출과 경기에는 반사 이익이 기대된다. 특히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는 더 큰 혜택이 예상돼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확산되면서 균열 조짐을 보이는 유럽 통합을 봉합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부담도 만만치 않다. SNB는 최저환율제 유지를 위해 매입한 유로화로 유로채를 매입해 왔다. 최저환율제 포기 이후 유로채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해온 SNB의 비중이 떨어지면 조만간 미국식 국채 매입을 통해 양적 완화 정책을 계획 중인 유럽중앙은행(ECB)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에게 상당한 혼란을 줄 가능성이 높다.

특히 SNB와 최저환율제를 믿고 유로 국채를 사들이거나, 스위스프랑화 쇼트(매도) 포지션을 취하거나, 스위스프랑화 표시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에 가입한 투자자도 손실이 예상된다. 전형적인 ‘꼬리 위험(tail risk)’이다. 꼬리 위험이란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는 위험을 말한다.

SN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신뢰에도 커다란 손상이 예상된다. ‘은행의 은행’으로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앙은행이 신뢰를 지키는 일은 생명과도 같다. 특히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시대에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일수록 신뢰를 지켜야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이 있긴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2012년 유럽 재정위기를 잇달아 거치면서 양적 완화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공급해온 선진국 중앙은행의 신뢰에 균열을 보여 왔다. SNB는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신뢰가 높게 평가된다. 최저환율제 포기를 계기로 SNB까지 믿을 수 없게 되면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는 의외로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화(法貨)’로 상징되는 신용화폐 시대에 중앙은행마저 믿을 수 없다면 종전 이론과 관행으로 설명할 수 없는 ‘뉴 노멀 대혼돈(new normal chaos)’이 닥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