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6일 시추 기술 개발로 생산성이 높아져 내년 셰일 유전의 하루 원유생산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에너지업체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유전 현장에서 셰일오일을 시추하고 있다. 한경DB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6일 시추 기술 개발로 생산성이 높아져 내년 셰일 유전의 하루 원유생산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에너지업체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유전 현장에서 셰일오일을 시추하고 있다. 한경DB
셰일혁명을 등에 업은 미국의 ‘슈퍼 달러’에 신흥국이 바짝 엎드리고 있다. 셰일오일 생산량을 빠른 속도로 늘린 미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좌장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하며 산유국 1위 자리라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넘겨받을 태세다. 반년 새 절반 가까이 폭락한 유가는 미국 경제회복과 함께 달러화 가치를 최근 9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원자재 부국인 신흥국을 압박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저유가와 강달러라는 두 개의 칼이 더욱 강력해진 미국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美, 사우디와 에너지패권 다툼

한때 배럴당 120달러를 넘보던 브렌트유 가격은 올 하반기 들어 50% 가까이 폭락했다. 60달러를 간신히 웃돌고 있는 브렌트유 가격은 5년 반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급 과잉과 원유수요 감소, 달러화 강세가 맞물린 결과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유가 폭락의 이면에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쟁탈하려는 미국과 사우디의 ‘치킨 게임’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2008년 미국 텍사스 등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셰일오일은 6년 만에 하루 생산량이 당시 470만배럴의 두 배에 가까운 890만배럴까지 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에는 930만배럴까지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생산량(975만배럴)과 비슷한 수치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서 글로벌 원유 수요는 줄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유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OPEC은 감산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유가 하락으로 일부 OPEC 회원국이 재정위기 상황까지 몰리고 있지만 OPEC은 인위적인 유가 부양 대신 수익성 악화에 따른 미국 에너지업체 퇴출을 노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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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의 싸움은 가격급락으로 이어지면서 원유시장을 예측 불허의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노르웨이 에너지 전문 컨설팅업체 라이스태드에너지는 “미국의 주요 에너지업체들은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져도 수익성을 지켜낼 수 있다”며 “1980년대 오일쇼크 당시에는 사우디가 산유량을 늘려 유가를 크게 떨어뜨리면서 미국의 주요 에너지업체를 도산시켰지만 지금은 원유 시장 구조가 달라져 사우디의 전략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힘 세진 슈퍼 달러…신흥국은 ‘흔들’

유가 하락은 국제정치의 질서도 바꿔놓았다. 유가 판매에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충당하던 러시아는 물론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 미국의 대표적 적대국가들이 재정과 통화위기라는 벼랑끝 상황에 몰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표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와 남미의 제1 경제대국 브라질 경제도 유가 하락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미국은 유가 하락을 통해 장기 집권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견제하는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러시아에 유가 하락은 치명적이다. 원유 수출이 국가 재정 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반면 유가와 역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달러화 가치는 계속 오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90선을 넘어섰다. 9년 만에 최고치다. 저유가에 강달러까지 겹치면서 산유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요동치고 있다. 올 들어 신흥국 통화 가치는 2008년 금융위기(-16.2%) 이후 최대 하락 폭인 12% 떨어졌다. 산유국에 이어 신흥국 전반으로 통화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투자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달러화 가치가 초강세를 나타내는 슈퍼달러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하고 성장이 정체되는 등의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분석실 부장은 “저유가로 경제에 활력을 찾은 미국의 달러화 강세가 심화하면서 유럽과 일본의 통화정책 효과까지 반감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