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전자주소(샵메일)부터 유튜브와 같은 방송 콘텐츠 플랫폼까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 늘고 있다. 사업자들을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교류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시장경제 원리와 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아 ‘무용지물’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민간이 할 ICT사업 직접 추진…'정통부 DNA' 못 버리는 미래부
○현실성 없는 정부 정책

한국형 방송 콘텐츠 플랫폼인 ‘콘텐츠 코리아 플랫폼(K-플랫폼)’은 업계에서 우려를 제기하는 대표적 사업 중 하나다. 내년에 예산 10억원이 할당되는 이 플랫폼은 국내 중소 방송사와 제작사, 1인 제작자의 콘텐츠 수출을 돕기 위해 기획됐다.

국내 콘텐츠를 이 플랫폼에 올리면 해외 지상파나 케이블TV, 인터넷방송(OTT) 사업자가 골라서 구매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한류 콘텐츠 판매를 위한 기업형 콘텐츠 장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방송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활성화되기 어려운 아이디어라는 지적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영화와 달리 방송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노출돼 인기를 얻어야만 가치가 올라간다”며 “유튜브나 국내 방송사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를 누가 사겠느냐”고 말했다. 역으로 입소문이 난 콘텐츠는 알아서 해외 사업자가 ‘러브콜’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이래저래 실용성이 없는 정책인 셈이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관계자는 “돈이 되는 국내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사나 일부 종합편성채널에 쏠려 있는데 그들은 직접 사업계약을 맺는다”며 “남은 콘텐츠 사업자를 위해 플랫폼을 만든다는 게 취지는 좋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민간의 발목만 잡는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구상하는 ‘데이터 거래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데이터 거래소는 각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서 모은 다양한 데이터의 규격을 맞춰 주식처럼 한곳에서 매매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미래부는 지난 5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3회 정보통신 전략위원회에서 민간 중심의 데이터 거래소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국내 ICT 기업에서 빅데이터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한 임원은 “데이터 교환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는 ‘대명제’는 참이지만 단순히 장터를 만든다고 될 일은 아니다”며 “서로 필요한 데이터를 가진 기관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쓸모 있는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등기우편’을 표방한 샵메일 사업에 대해서도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개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샵메일 도입 이후 공공 부문의 샵메일 가입률은 7%(748개 기관 중 53개)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유연해야 하는 ICT산업이 정부 주도 플랫폼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ICT 업계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미래부가 초고속 인터넷 보급,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세계 최초 상용화 등에 개입해 성공을 거둔 옛 정보통신부 시절 DNA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직접 ‘판 짜기’에 매달리고 있다”며 “정부 핵심 국정 아젠다인 ‘창조경제’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