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정치위기 몰린 '차르 푸틴'…미션임파서블 도전 '경제 女帝'
러시아 경제가 유가 급락과 물가 상승으로 침체에 빠져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대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3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그동안 겪지 못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라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올 들어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 민족주의를 고취시켰지만 이로 인한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에 다시 악몽 같은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로 폭락하고, 미 달러화에 대한 루블화 가치가 연초보다 40% 떨어지면서 생필품 가격이 치솟는 등 경기침체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0.8% 성장을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종전의 1.2% 성장 전망치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최대 정치위기 몰린 '차르 푸틴'…미션임파서블 도전 '경제 女帝'
NYT는 러시아 위기의 본질은 유가와 루블화 가치 하락보다 7000억달러에 달하는 대외 채무에 있다며 서방 은행이 보유한 러시아 채권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채권의 대부분은 러시아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공기업이 갖고 있다. 최근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를 비롯해 금융과 철도 공기업은 900억달러가 넘는 자금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영국의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1200억달러의 대외채무가 러시아의 실질적인 디폴트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수출의 60%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는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서 유가가 배럴당 96달러 정도 유지해야 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원유(WTI) 1월물은 전날보다 0.75% 오른 배럴당 67.38달러에 마감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과 거리가 멀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금융 불안을 해소할 구체적인 대책은 언급하지 않은 채 내년까지 유가가 러시아 재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앤더스 애슬런드 피터슨재단 수석위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푸틴 정권의 상징이었던 정치적 안정성이 무너지려 한다”고 말했다.

러 경제 '보루' 나비울리나, 루블화 가치 폭락 용인
뚝심있는 통화정책 펼쳐…실물경제 '붕괴' 막아내


지난해 6월 50세의 나이로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에 전격 발탁된 엘비라 나비울리나 총재가 그나마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나비울리나 총재가 유가 폭락과 서방 측 경제 제재로 디폴트 위기에 직면한 러시아의 경제를 방어하고 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비울리나 총재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하수인이 될 것이란 우려와 달리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의사 결정으로 러시아 경제를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임명 당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푸틴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기용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당시 의회도 찬성 360, 반대 20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올 들어 루블화 가치가 약 40% 폭락하고,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으면서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모든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루블화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연 9.5%로 전격 인상하면서 경제난을 가중시킨 ‘반역자’라는 비난과 함께 정치권의 검찰조사 위협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나비울리나 총재가 뚝심 있는 통화정책으로 러시아의 실물경제를 아직은 온전히 지켜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달 11일 나비울리나 총재가 내린 자유변동환율제 도입 결정이 루블화 가치의 추가 급락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풀 경우 오히려 달러에 대한 가수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결과적으로 환율을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FT는 “나비울리나 총재가 경제부 장관을 지내 실물경제에 능통하다는 점이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바이카스 조시 러시아지역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는 “총재 지명 초기에는 크렘린에서 오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과 물가상승률이 성장률을 넘어설 것이란 우려가 겹쳤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우려를 해소하면서 임기를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강영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