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의 거대한 힘을 이틀 동안 오롯이 끌어내다
브람스의 교향곡 네 편은 그 자체로 뚜렷한 인생 드라마다. 달콤하고 신나는 멜로디와 리듬은 적지만 쌉싸래하고 심오한 그 세계에 심취하면 다른 음악이 방해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음반으로는 시디 두 장 또는 석 장을 연속으로 듣는 일이 많다.

클래식 공연에서 이렇게 연속으로 브람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경험은 드물다. 중간에 서곡이나 협주곡이 끼기 때문에 끊기기 마련이다. 3일 예술의전당,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윤한결이 지휘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는 첫날 3번과 1번, 둘째 날 2번과 4번을 연속으로 선보인 야심 찬 기획이었다. 작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관하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한 지휘자 윤한결을 재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브람스 교향곡 3번 1악장을 윤한결이 온몸을 써가며 뜨겁게 시작했다. 커다란 힘이 무대 위를 휩쓸면서도 정연한 질서는 잃지 않았다. 이틀 내내 목관악기 주자들이 역주를 펼쳤는데 1악장에서 구두점을 예쁘게 찍는 듯한 플루트의 활약이 돋보였다.
브람스 교향곡의 거대한 힘을 이틀 동안 오롯이 끌어내다
2악장 안단테는 근래 들어본 교향곡 3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꿈과 환상이 잿빛 햇볕을 쏘이는 먼지처럼 아른대는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내에 가을볕이 기울어가는 느낌이었다.

유명한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는 템포 설정이 돋보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주제선율이 폐부를 찌르며 들어왔다. 내성적인 호른은 마치 겹겹이 진 붉은 노을처럼 뭉근하게 도드라졌고 느릿한 템포에 나른해졌다.

마지막 4악장은 씩씩한 발산이었다. 일종의 올드 스타일이면서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불필요한 힘을 빼고, 마치 새의 둥지를 지키듯 섬세하게 내성의 구조를 유지하는 윤한결 지휘의 묘미를 맛볼 수 있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은 팀파니의 연타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총주에서 파쇄음이 상쾌하게 다가왔다. 얼마나 세게 두드렸으면 갑자기 팀파니 말렛(북채)의 끝부분이 터져 날아갔다.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중저음이 큰 역할을 했다.
브람스 교향곡의 거대한 힘을 이틀 동안 오롯이 끌어내다
2악장에서 오보에 독주는 청아하게 뻗어나갔다.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는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을 오르는 종달새를 떠올리게 했다. 3악장에서는 대중성을 이기는 고전음악의 서정성을 생각하게 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대양의 한 가운데 잠수하다가 가끔씩 수면에서 숨을 쉬는 듯한 분위기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4악장의 도입부는 마성이 이글거렸다. 광활한 벌판에서 홀로 울리는 듯한 호른 솔로는 무대를 더욱 넓게 느껴지게 했다. 코랄 부분은 종교적이라 할 정도로 경건했고 두텁게 조형해냈다. 가장 유명한 주제선율이 반갑게 다가왔는데, 질주하면서도 무게를 잃지 않는 균형 감각이 탁월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2번은 호른의 안정감 있는 연주로 시작했다. 현악군의 합주는 귀가 시릴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현과 관의 에너지를 한데 그러모으며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부풀어 올랐고 오보에와 플루트가 아련하게 우짖으며 정리했다. 마무리는 둥글고 온화했다.

2악장은 현의 흐름이 매우 부드럽고 유동적이었다. 다른 연주들에 비해서 이상할 정도로 꺼지는 듯한 슬픔이 느껴진 부분이기도 했다. 기존에 갖고 있었던 교향곡 2번의 인상을 수정하게 된 계기였다.

플루트와 오보에의 도입부가 아름다웠던 3악장에서 총주부는 빠른 템포로 바뀌었다. 멜랑콜릭하면서도 껴안아 주는 듯한 푸근함이 느껴졌다.

4악장 도입부는 부드러웠지만 총부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를 냈다. 완급 조절이 자유자재였다. 속도를 늦추며 정리를 하기도 하고 청아한 목관과 함께 일필휘지로 내달렸다. 피날레의 자연스러운 속도감과 마무리가 일품이었다. 윤한결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열심히 연주한 오보에 주자와 흠결 없었던 호른 주자를 제일 먼저 기립시켰다.

교향곡 4번 1악장에서는 현악군이 차갑고 신선하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총주에서 모든 소리들이 다 울리도록 윤한결은 투명하게 지휘했다. 미스터리한 내성의 힘이 느껴졌다. 비극적 성격을 극대화한 뒤 피날레로 접어들었다.

2악장에서 호른과 목관이 오가고 현이 피치카토를 하며 먹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첼로가 앞장서는 따스한 주제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플루트가 영롱하게 현악과 섞이는 부분이 일품이었다. 현악 전체의 주제선율이 연주되고 거대한 총주는 미스터리한 피치카토로 마무리됐다.
윤한결 지휘자와 한경arte필하모닉이 연주를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윤한결 지휘자와 한경arte필하모닉이 연주를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쉬어가는 듯한 3악장은 경쾌하고 비교적 빠른 템포로 귀를 자극하는 후련한 질주였다. 4악장은 숙명적인 깊은 구렁 속으로 맑은 현악군을 끌고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연상됐다. 파사칼리아, 샤콘느의 무한한 궤도가 바이올린군의 기민함으로 가시화됐다. 느릿하면서도 파고드는 플루트 솔로의 호소력은 대단했다. 트롬본이 부는 코랄풍 선율에서는 템포를 늦췄다. 현의 트레몰로도 긴장감 넘치게 들렸다. 브람스에서 이토록 선명히 분리되는 악구를 눈으로 귀로 접해본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았다.

윤한결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요란하지 않으면서 낮고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브람스 음악의 거대한 힘을 설파하는 데 성공했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