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유년의 맛
세상엔 맛있고 새로운 음식이 많다. 맛집이라는 두 글자를 검색창에 넣으면 참 많은 음식이 나온다. 먹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강렬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미각이라는 건 사실 무척이나 보수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맛집 영상을 보면 아예 낯선 음식이 구미를 당기는 경우는 드물다. 언젠가 한 번쯤 맛봤던 음식이 펼쳐질 때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러고 보면 식욕이 자극되는 원리는 원체험에서 시작되는 상상력의 도미노와 닮아 있다.

한동안 퓨전 음식이 유행한 적이 있다. 퓨전의 유행에는 익숙한 맛에 대한 싫증이 전제된다. 지겹도록 먹어서 익숙해진 음식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을 섞어 새롭게 만들어 낸 맛, 그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퓨전의 핵심이다. 그런데 최근엔 퓨전 바람이 잦아들고 다시 ‘정통’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기우는 듯하다. 퓨전이라는 그럴듯한 신조어가 정체불명의 음식에 대한 통칭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금씩 세상을 알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유년의 맛이 더 당긴다. 아버지가 월급날 시장에서 튀겨왔던 기름진 닭고기, 노란 백열등 밑에서 새빨갛게 빛나던 홍옥, 1000원에 몇 개 단위로 비닐 봉투에 담아 팔던 귤. 맛이야 품종이 개량되고 기르는 법도 훨씬 발전된 지금이 더 훌륭하겠지만 지금 먹는 그 맛이 어린 시절 맛보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달고, 더 실하고, 더 맛있지만 어쩐지 예전 맛만 못하다는 아쉬움이 자꾸만 든다.

유년의 맛 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바로 갱시기이다. 이 음식은 익은 김치와 콩나물, 감자 등을 덤벙 덤벙 썰어 넣고 끓여 먹는 국밥이다. 추운 겨울 별다른 국도 찌개도 없는 날이면 엄마는 신김치에 떡이나 밥을 넣고 이걸 끓여 주시곤 했다. 어린 시절 두꺼운 내복을 입고 마주한 아침상에 놓여 있던 갱시기는 이름만큼이나 촌스러웠다. 퉁퉁 불어 터진 국수까지 얹어 나온 날이면 입이 툭 튀어나와 빈 젓가락질로 억울한 심경을 드러내곤 했다.

날이 하루하루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니 그 투박하고 촌스럽던 갱시기가 생각난다. 모두 다 똑같은 그릇을 받고 마주했던 아침상 그 유년의 추억과 함께 말이다. 아무리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듯, 어쩌면 그 유년의 맛은 기억 속 미각으로만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