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동반우승 새 역사 도전

배구는 한국 구기종목 가운데 세계적인 수준에 가장 먼저 근접한 종목이다.

여자 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스포츠 사상 첫 구기종목 올림픽 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남자 배구 역시 197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 4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2006년 도하 대회에서 프로 종목 중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남자 배구였다.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구기종목의 자존심을 지켜온 한국 배구는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통틀어 4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남녀가 동시에 금메달을 따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한국 배구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동반우승이라는 새 역사에 도전한다.

◇ 남자 배구, 이란 넘어야 금메달 보인다 = 남자 배구는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위에 그쳤던 아픔을 딛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다.

'에이스' 문성민(현대캐피탈)이 무릎 부상으로 빠졌지만 박철우(삼성화재)가 건재하고, 젊은 공격수 서재덕과 전광인(이상 한국전력)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특히 박철우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 10월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리베로를 능가하는 수비형 공격수 곽승석(대한항공)은 뛰어난 수비 능력 이외에도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 해결해줄 수 있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

신영석과 박상하(이상 국군체육부대)가 포진한 센터진은 상대 블로킹을 무력화할 수 있는 빠른 속공 능력을 갖췄다.

고무적인 점은 지난해 11월 갑작스럽게 상근예비역으로 입대한 세터 한선수의 기량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배구의 흐름인 '스피드 배구'를 한국이 구사하려면 한선수의 빠른 토스워크가 필요하다.

한선수는 지난달 24일 한국의 6전 전승 우승으로 막을 내린 제4회 아시아배구연맹(AVC)컵 남자배구대회에서 베스트 세터상을 받으며 부활을 알렸다.

한국, 중국, 일본의 기량이 엇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남자 배구 금메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랭킹 11위로 아시아권에서 최상위인 이란을 상대로 한국(세계 랭킹 19위)은 2008년 AVC컵 대회 예선전에서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한때 아시아 배구의 변방에 머물렀던 이란이지만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성장하며 아시아 최강으로 올라섰다.

공교롭게도 이란을 아시아 최강으로 이끈 지도자가 현재 한국팀의 사령탑을 맡은 박기원 감독이다.

박 감독의 지도 아래 기본기를 다진 이란은 이탈리아 코치를 영입하며 기량이 급상승했다.

유럽 선수 체형과 비슷한, 뛰어난 하드웨어에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됐던 서브 리시브 등 수비적인 측면도 상당히 향상돼 지금은 오히려 한국을 능가한다는 평가다.

다행인 점은 이란이 아시안게임보다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자마자 아시안게임을 치르게 될 이란이 누적된 피로를 얼마나 단시간에 털어낼지가 한국에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월드 클래스' 김연경의 득점포에 기대 = 남자보다 여자 대표팀의 금메달을 높게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유는 하나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연경(페네르바체)이라는 확실한 에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시안게임 전초전인 2014 월드그랑프리에서 아시안게임 경쟁국인 중국에 세트 스코어 1-3, 일본에 2-3으로 각각 역전패했다.

그러나 김연경과 함께 대표팀 전력의 또 하나의 축인 센터 양효진의 부상 결장에 따른 패배였기에 큰 의미를 둘만 한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센터 양효진의 부상 공백에도 태국은 이겼고 일본과는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는 점에서 만족할만한 경기 내용이었다.

팔꿈치 부상에서 거의 회복한 양효진은 오는 6일부터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VC컵 대회에 출전해 아시안게임 전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이선구 감독의 지도력도 믿음을 더한다.

20년 동안 중동에서 '배구 전도사'로 일한 그는 2010~2011시즌 최하위에 그친 GS칼텍스 사령탑에 올라 3시즌 만에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현재 아시아 여자배구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 태국이 4강을 형성하고 있다.

변수는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일정이 겹친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일본은 세계선수권대회에 1진을 보낼 예정이어서 한국은 금메달을 따낼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대신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적이 없는 태국은 아시안게임에 최정예 멤버를 출전시킬 예정이다.

따라서 태국이 '복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청소년 시절부터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태국 대표팀 선수들은 한국의 1990년대 호남정유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비력이 끈질기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자흐스탄 역시 높이와 힘에서 상당히 강점을 보이기 때문에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 남자 배구는 20일 오후 3시에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카자흐스탄과 A조 예선 첫 경기를 치르고, 여자 배구는 2시간 반 뒤 같은 곳에서 A조 인도와 맞붙는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