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킬링필드와 '악의 평범성'
20세기는 광기(狂氣)의 시대다. 독재자들은 대중, 특히 10대 청소년을 자주 동원했다. 히틀러 유겐트(Ugend·청소년단), 마오쩌둥의 홍위병(紅衛兵), 캄보디아 크메르루주(Khmer Rouge·붉은 크메르)가 대표적이다. 청소년은 세뇌와 선동이 쉽고, 체격·체력 면에서도 쓸모 있다.

히틀러 유겐트는 ‘충성스럽게 살고, 죽음을 거부하고 싸우며, 웃으면서 죽는다’는 게 행동강령이었다. 나치는 순진한 청소년들에게 파시즘을 주입하고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시켜 전쟁터로 내보냈다. 홍위병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위협을 느낀 마오가 1966년 문화대혁명을 일으키고 1000만 홍위병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했다. 홍위병은 ‘4구(四舊: 낡은 사상·문화·풍속·습관) 타파’란 구호 아래 기존 질서를 깨는 데 앞장섰다.

크메르루주는 홍위병의 복사판이다. 지도자인 폴 포트부터 철저한 마오이즘 신봉자였다. 지식인 부유층은 평등한 이상사회를 좀먹는 세균이라며 무차별 학살했다. 1975년부터 불과 3년7개월 동안 전국민의 4분이 1인 2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폴 포트는 프랑스 유학시절 온순하고 유머가 많으며 이상향을 꿈꾼 학생이었다고 한다. 홍위병과 크메르루주에 앞장 선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작은 악마’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이성이 광적인 비이성의 근원이 된다고 했다. 이상향을 추구할수록 그에 반대되는 주장과 논리를 더욱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혁명에는 하나같이 광기가 번득인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이히만은 국가의 명령에 충실했을 뿐, 자신은 죄가 없다는 식으로 항변했다. 평범한 사람도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거나, 권력에 완벽하게 통제될 때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선 악을 악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청소년들에게 ‘절대반지’를 끼워주면 눈이 멀 수밖에 없다.

킬링필드 학살 주범인 누온 체아(88)와 키우 삼판(83)이 엊그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학살 35년이 지나서야 단죄가 이뤄진 것은 킬링필드가 몇몇 지도자가 아닌 ‘세대의 범죄’였던 탓이다. 훈 센 총리조차 크메르루주 출신이다. 악이 곧 일상이었다. 세월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자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비극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