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반군 책임공방으로 긴장수위 한층 높아질 듯…대화 계기 가능성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17일(현지시간) 발생한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사건은 꼬여만 가던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중심으로 독립공화국을 선포하고 중앙정부와 대립해온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은 그동안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안을 거부하고 독립 움직임을 강화해왔다.

지난 6월 초 취임한 포로셴코 대통령이 교전 중단, 상호 무장해제, 중앙 권력의 대폭적 지방 이전 등을 포함한 평화안을 제안했지만 분리주의 반군은 수용을 거부하고 정부군과의 교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겉으로 정부군과 반군 간 평화협상을 촉구해온 러시아도 자국 출신 의용대가 국경을 넘어 반군에 가담하고 러시아제 무기가 반군 진영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통제하는데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의 암묵적 지원을 등에 업은 반군은 완강한 항전 태세를 좀처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이 가까스로 합의했던 임시 휴전이 지난달 말 깨지면서 정부군은 이달 초부터 반군에 대한 진압 작전 공세를 강화했다.

그 결과 정부군은 지난 5일 반군의 최대 거점이던 도네츠크주 북쪽 도시 슬라뱐스크를 점령한 데 이어 인근 4개 도시에서 반군을 잇따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정부군의 집중 공세에 밀린 반군은 도네츠크주 주도 도네츠크와 인근 루간스크주 주도 루간스크 등으로 이동 집결해 결사항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정부군은 두 도시를 봉쇄하고 외곽에서부터 반군을 공격해가는 압박 전술을 펴고 있다.

이에 반군은 러시아제 로켓포 등으로 정부군 전투기들을 격추하는가 하면 산발적 게릴라전으로 정부군 부대들을 타격하면서 맞서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대표들이 구성한 접촉그룹은 정부군과 반군 간 협상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해왔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 지역인 도네츠크 인근에서 여객기 추락이란 최악의 악재가 불거졌다.

더구나 여객기 추락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미사일 격추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양측 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분리주의 반군은 여객기 격추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지우며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로선 진상을 규명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여객기 추락 사건은 교전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던 국제사회의 노력을 한층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여객기 격추에 대한 책임 공방에 날을 세울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이 협상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약 3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수습과 대책 마련에 매달릴 국제사회도 당장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 협상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어졌다.

여기에 반군의 입장을 지원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을 거들 서방까지 책임 공방에 가세할 경우 팽팽한 대립을 계속해온 양 진영의 대치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하지만 치열했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은 당분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느 쪽도 전투 행위를 강행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끔직한 비극이 역설적으로 교전 당사자들 간 대화 개시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친러시아 반군 측이 이번 사건 조사를 위해 3일간 임시 휴전을 제의한 것은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