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멀리 보고 투자하는 ZF의 경쟁력
“10년을 준비했습니다.”

요아힘 뢰브 독일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밝힌 소감이다. 10년 동안 전술을 다듬고 선수를 육성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 독일 출장길에 기자는 같은 말을 자동차 부품사 ZF의 프레드릭 슈테들러 상용부문 총괄사장에게서 들었다.

아헨의 테스트 드라이빙센터로 전 세계 기자 90명을 초대해 개최한 ‘이노베이션 트럭’ 공개행사에서였다. ‘이노베이션 트럭’은 태블릿으로 원격조종할 수 있는 무인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원격조종 시스템과 하이브리드용 변속기, 스티어링휠 시스템 등 ZF의 신기술이 집약된 모델이다. 슈테들러 사장은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기업에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1915년 설립된 ZF는 내년에 100주년을 맞는다. 한 세기에 걸쳐 성장을 지속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년 뒤에 쓰일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해 가장 앞선 부품을 개발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벤틀리 등 최고급 차 메이커들을 오랜 기간 고객으로 지켜온 비결이다. ZF의 한국 법인인 ZF서비스코리아의 정연호 사장은 “본사는 항상 5년, 10년, 20년 단위의 사업계획을 요구한다”며 “단기성과보다 중장기적인 측면을 우선시하는 경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도 독일 축구와 제조업의 공통점이다. 10년 전 독일 축구협회(DFB)와 독일 축구리그연맹(DFL)은 자국의 분데스리가 1, 2부 리그에 참여하는 모든 구단들이 반드시 유소년팀을 운영하도록 했다. 구단들은 10년 동안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자했고, 마리오 괴체와 같은 유망주들을 배출했다. 독일은 유소년 축구팀이 10만개, 한국은 1500여개에 불과하다. ZF, 보쉬 등 부품사들 역시 연구개발(R&D)에 매출의 5% 이상을 투자하며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국내 부품업체의 R&D 투자비율은 2% 정도다. 독일의 강소기업(히든 챔피언) 수는 1307개, 한국은 23개다. 우리도 지금부터 10년 후를 대비한 투자를 해야 할 때다.

최진석 아헨(독일)/산업부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