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옹녀와 춘향, 현대엔 누가 더 인기女?
성이 옹(雍)가여서 옹녀라 불렸던 여자. 오늘날 ‘옹녀’는 ‘화끈하고 센 여자’라는 성적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1980년대 에로 영화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면서 ‘성애의 화신’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변강쇠가》에서 그려지는 옹녀는 강인한 생활력을 지니고 남편을 따뜻하게 포용하면서 평범한 가정을 꿈꾸는 여성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했지만 결국 험한 꼴만 봐야 했던 옹녀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조혜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 교수는 《옛 여인에 빠지다》에서 옛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15명을 불러내 “공간과 공간을 건너, 시대와 시대를 건너” 당대와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읽어낸다. 소설 속 ‘그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해 당대 현실 속 ‘그녀들’이나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살필 수 있는 ‘그녀들’의 문제로 연결된다.

조선시대 미인도<작자 미상> /마음산책 제공
조선시대 미인도<작자 미상> /마음산책 제공
생각의 흐름은 외국 고전이나 현대 문학작품들은 물론 요즘 TV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로 넘나든다. 춘향과 옹녀같이 익숙한 인물들은 저자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고,《삼한습유》의 마모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캐릭터들은 새롭게 소개된다.

오늘날의 옹녀는 비판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다. 성적 매력이 있고 남편에게 마음을 다해 다가서고 억척스러운 생활력까지 갖췄으니, 뭇 남성이 결혼하길 원하는 훌륭한 신붓감이 아닐까. 저자는 옹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너무 일찍, 그것도 억압의 중층구조 속에서 하부를 차지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운몽》의 동정호 용왕 딸인 용녀 백능파는 안데르센과 월트 디즈니 판본의 《인어공주》와 비교하며 풀어간다. 인어공주처럼 무력하지 않고, 사랑하는 양소유와 비교적 동등한 관계라는 점에서 백능파는 보다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다. 《삼한습유》의 미워할 수 없는 악인 캐릭터인 마모에게선 ‘현대적인 아줌마’의 당차고 헌걸찬 기상을, 《사씨남정기》의 현숙한 부인 사정옥에게선 모범생 마인드의 속내를 발견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