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감사 탓만 하는 국민은행 직원들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내부갈등을 외부로 발설해 평지풍파를 일으킨 감사만 은행을 떠나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징계 수위 결정을 앞두고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전산 교체를 결정하는 과정이 합리적이었는데도, 마치 큰 비리가 있는 것처럼 정병기 감사가 금융당국에 검사를 요청하는 돌출 행동을 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며 억울해했다.

올초 부임한 정 감사가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면서 끊임없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의견이 맞지 않는다’며 감사가 사외이사들에게 수차례 폭언을 할 정도로 안하무인식 태도를 보인 게 사태를 회복불능으로 몰고간 핵심요인이라고 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그의 토로에서는 애사심이 묻어났다. ‘감사’라는 완장을 차고 국민은행 직원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사람만 없으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이란 기대도 배어 있었다.

심정적으론 이해가 가는 항변이다. 감사가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일을 풀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에 기자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과는 별개로 국민은행 직원들은 억울해하기보다 냉철한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 감사 부임 전에도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채권 횡령사건 등 굵직한 사고가 끊이지 않은 점을 볼 때 감사를 탓하는 건 선후를 잘못 짚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말이나 위압적인 태도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국민은행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굽었다고 탓하기에 앞서 달을 바라봐 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징계 수위는 26일 결정된다. 결과에 따라서는 두 사람이 모두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물론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부임하면 사태는 어떻게든 봉합될 것이다. 하지만 ‘형식’을 탓하며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자세로는 경영진이 백번 바뀌어도 악순환의 반복을 피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앞선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