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동부대우전자 직원의 한숨
“10여년 만에 여름 마케팅 한번 제대로 해 볼까 했는데…. 허탈하네요.”

동부대우전자 마케팅부서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푸념이다. 그는 동부그룹에 합병되기 전 대우일렉트로닉스 시절부터 쭉 이 회사에서 일해 왔다. 이 회사는 지난 10여년 동안 주인이 바뀌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작년 3월 동부 품에 안겼고 올초부터 본격적인 여름 성수기 마케팅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순조로울 것 같던 그룹 구조조정이 미궁 속으로 빠지면서 영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그는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삼성 LG는 물론 요즘엔 제습기 등의 분야에서 중견기업들한테도 밀리고 있다”며 “총력을 기울여 추격해도 모자랄 판에 손발이 묶여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과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그룹 구조조정 진행과정에서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기대했던 포스코의 ‘동부 패키지(동부제철인천+동부발전당진)’ 매입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양측은 서로 비방하며 책임을 떠넘기려는 양상이다. 동부는 “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포스코에 패키지 매각을 추진하다 일을 그르친 것”이란 주장이고, 산은은 “시간이 촉박해 개별 매각은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결국 산은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동부화재 대주주인 김남호 부장의 지분을 담보로 내놓지 않으면 추가 자금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동부 역시 “동부그룹이 잘못되면 산은 책임”이라며 맞서고 있다. 추가 자금지원이 없으면 동부그룹의 미래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쉽게 어느 한쪽의 주장에 동조하기 쉽지 않다.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지혜를 모아도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데, 언제까지 서로 비방만 할 것인가. 업계에서는 현금 흐름에 문제가 발생한 기업을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자산 매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감정싸움 와중에 힘이 빠지는 건 동부 임직원들이다. 흡연실에 모인 직원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짓는다. 기업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만큼 채권단과 동부그룹은 감정싸움을 벌이기보다 똘똘 뭉쳐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