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베리 모델이 금융업계 살린다…특화된 PEF로 글로벌 시장 뚫어야"
“한국도 스웨덴 최대 재벌 가문 발렌베리처럼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으로 돈을 버는 사모펀드(PEF)를 강화해야 해요. 먹거리가 없는 금융투자업계나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대기업들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49·사진)은 21일 주식 거래 위축, 과당 경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투자업체의 생존법으로 ‘발렌베리 모델’을 제시했다. 발렌베리그룹은 북유럽 최대 PEF인 EQT를 통해 글로벌 M&A 시장에 진출했다.

EQT는 발렌베리 가문 기업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AB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사모펀드다. 주로 북유럽 지역 중장비 업체들을 인수하는데 최고경영자(CEO)로 그룹 계열사의 전직 임원들을 활용한다. 이들은 산업과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신 원장은 “원화를 기반으로 한 국내 업체들이 달러로 승부해야 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골드만삭스와 같은 매머드급 투자은행(IB)과 자금 조달 경쟁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전자나 자동차, 조선에 집중하는 PEF처럼 한국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국내 증권사가 주축이 된 PEF가 아시아 전자업체를 인수, 삼성전자나 LG전자 전직 CEO에게 경영을 맡기는 식이다. PEF의 구조만 잘 설계하면 연기금은 물론 현금이 많은 대기업들도 ‘재무적 파트너’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신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차별화된 해외 투자처를 발굴, 한국의 자산가들과 이어주는 사업도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영국 자산가에게 미국에 투자하는 채권을 팔아 성장한 미국 투자은행 JP모간식 성장 모델이다.

신 원장은 “한국의 자산을 들고 해외로 나가 ‘갑’의 입장에서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을’로 진출하는 것보다 승산이 높다”며 “증권사들이 제각기 특화된 투자처를 개척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아젠다인 ‘창조경제’가 자본시장에서 좀처럼 구현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정부 규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정부의 규제 장벽에 막히는 일이 잦다 보니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가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신 원장은 “규제가 많은 것보다 언제 규제 내용이 바뀔지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금융투자업체들이 새로운 영역에 통 큰 베팅을 하려면 적어도 10년간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의 연초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새로 규제를 만들거나 기존 규제를 뜯어고치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며 “법과 시행령을 시의적절하게 잘 고쳐야 일 잘하는 공무원으로 인정받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원장은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출신으로 지난달 8일 자본시장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국민경제자문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글=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사진=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