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D프린팅 체험공간 만들어라
한국의 핵심 성장축인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제조업 수익성이 떨어지고 성장률 또한 급격한 둔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마저 급락하며 대부분의 수출 기업이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지난 20여년간 가시화된 두 가지 신(新)제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제조업 패러다임 변화의 특징은 첫째, 제조업 소프트웨어 융합형 산업화를 꼽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제품의 반도체화·소프트웨어화, 연구개발(R&D) 및 생산 과정의 소프트웨어화 즉, 컴퓨터제어 자동화기계, 컴퓨터이용 설계(CAD) 및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기술 등을 적용한 공정혁신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며 제조업 르네상스를 꾀하고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첨가형(3D프린팅) 제조혁신은 제조업에 대한 소프트웨어 적용의 가장 앞선 형태로써 ‘와해성 제조업 혁신’의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컴퓨터를 통한 개발과정의 가상화, 디지털 제조구축 등 2000년대 들어 선진국에서 발전한 소프트웨어 중심 공정혁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제조업 혁신이 선진국 중심에서 선진국과 신흥공업국으로 양분돼 전개되는 양상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성장 추세를 보이는 거대시장을 목표로 하는 저가(低價) 혁신이 미국 경영대학에서 비중있게 다뤄질 만큼 제조업 혁신은 선진국 전유물이라는 상식이 깨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저가혁신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아 추가성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 수출시장 지향적이며, 하드웨어 중심의 전통적 대량 생산방식으로 급성장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산업 체제는 신제조업 패러다임에 부응한 변화를 막는 ‘잠금’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 체제와 상충하는 새로운 제조업 위기 극복 전략이 국가차원에서 실행돼야 한다. 이는 최고 통치권자의 지원과 관련 추진조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미국 등 선진국의 제조업 부활 이면에는 최고 통치권자 차원의 전략적 뒷받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제조업 위기는 단기적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것인 만큼 무엇보다 위기극복을 위한 장기전략 수립이 우선돼야 한다. 이 장기전략은 ‘새로운 제조업’ 분야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및 연구개발 역량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의 소프트웨어화에 따른 ‘가상’개발 및 생산 프로세스와 관련되는 디지털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제조 소프트웨어, 관련 소재, 통합전산소재엔지니어링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관련 첨단기술의 빠른 도입과 확산을 촉진하는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연구개발 및 제조공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소프트웨어 중심 공정혁신에 대한 인프라 확충에 기업들이 집중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최첨단 기술 영역의 3D프린팅 등 첨단 생산장비와 최신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을 클라우드 형태로 제공하는 디지털 혁신센터를 세워 ‘새로운 제조업’의 연구개발 및 제조 프로세스를 실험해볼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선도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및 엔지니어링·디자인 융합형 인력 양성체제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신흥국 시장을 목표로 한 저가혁신을 위한 투자 정책과 지원 인프라 구축도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야 할 분야다. 제조업 경쟁력에 대한 민간 주도의 모니터링을 매년 실시해 위기 극복 전략이 충실히 실행되고 있는지 점검한 뒤 현장에 반영하는 시스템도 정착시켜야 한다.

임채성 < 건국대 밀러MOT스쿨 교수 edisonfoot@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