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재앙을 부르는 조건들
말콤 글래드웰은 2009년 발간한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 “비행기 사고는 대개 일곱 가지 실수가 결합된 결과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조종사가 한 번 실수했다고 곧바로 파국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실수들이 더해지면 대한항공 괌 추락사건(1997년) 같은 재앙을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섬의 핵발전소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로의 물 필터 문제가 생겼고 이에 대비한 예비냉각시스템은 밸브가 닫혀 있어 작동이 안됐다. 융합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또 다른 임시밸브가 있었지만 웬일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조종실의 방사능 감지기도 먹통이었다.

득실거리는 편법과 불법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도 누구 한두 사람의 잘못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다. 월가의 탐욕과 금융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맞아 떨어진데다 ‘골디락스(성장세가 지속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거의 없는 이상적인 경제 상황)’ 운운하며 방만한 통화정책을 고집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실책이 더해지면서 엄청난 거품을 잉태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부실한 해운사가 쉽게 돈을 벌겠다고 무리하게 선박을 개조했고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지 않아 균형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구명 재킷은 필요한 만큼 없었고, 구명정 점검도 부실했다. 어디 이뿐인가. 선박 감독업무를 맡는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는 자기 사무실에서 망원경으로 화물 과다 적재 여부를 관찰했다고 한다.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등 정부의 감독 및 교정 시스템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국회, 감사원 등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스템 관리에 실패하고 재난 처리과정에서도 우왕좌왕한 현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모아지는 건 당연하다.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을 보면서 비통에 빠진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득실대는 편법과 불법의 실체들을 생생하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편법은 무질서·무매뉴얼·무윤리를 의미한다. 법과 윤리의 빈틈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자기 기만의 산물이다. 절차와 과정을 무시해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성장지상주의의 부산물이다. 편법은 더 큰 편법을 낳고 필연적으로 재앙을 부른다.

공무원 의식 확 바꿔야

편법이 득실거리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싹트기 어렵다. 희생과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 직업윤리가 힘을 잃는다. 침몰 당시 퇴화한 인간의 실체를 보여준 세월호 선장을 마냥 ‘변종’이라고만 손가락질할 수 없다.

실종자 구조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3일 CNN방송은 에베레스트 눈사태에서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미국 산악인 존 라이터의 소식을 전했다. 세월호 선장과의 극한 대비로 얼굴이 화끈댔다.

바닥을 드러낸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회복시킬지 우리는 시험대에 섰다. 시스템 관리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한다는 마음으로 공무원들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건전한 시민정신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들 스스로도 일상생활에서 이미 익숙해진 편법이 없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고통을 겪은 만큼 성숙해지지 못하는 사회라면 어찌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