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세상은 '괴짜'들이 바꾼다
얼마 전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과학자들을 영입했다는 기사가 났다. 무인항공기(드론)와 인공위성을 띄워 전 세계 어디서나, 오지에서도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사를 본 한 지인의 반응은 이랬다. “생각하는 스케일이 다르네.”

저커버그는 이에 앞서 가상현실기기 제작사인 오큘러스를 20억달러에 인수했다.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친구’들끼리 문자와 사진을 주고받는 정도지만 앞으론 가상현실을 통해 ‘경험’까지 공유토록 하겠다는 게 그의 야심찬 목표다.

영화 ‘토탈 리콜’이나 ‘인셉션’처럼 현실과 가상이 구별되지 않는 세상이 머지않아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릴 적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던 ‘선 없는 전화기’가 이젠 생활필수품이 됐다. 몇 년, 또는 몇 십년 뒤 친구들과 가상현실 속에서 생일파티를 하지 말란 법도 없을 듯싶다.

관심, 몰입과 끈기

현실의 변화는 종종 상상 속에 먼저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내려고 시도한 ‘괴짜(geek)’들에 의해 세상은 바뀌었다. 이들의 특징은 뭔가에 대한 남다른 관심, 몰입과 끈기다.

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를 개발한 파머 러키는 가상현실에 푹 빠져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40여개의 헤드셋을 전부 사모았다.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자 직접 제작에 나섰고, 기존 것보다 싸고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자 19세 때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했다. 지금은 게임을 좀 더 실감나게 하는 정도지만 적용 범위가 더 확대될 수도 있다.

저커버그가 열두 살 때 치과 의사 아버지를 위해 메신저 프로그램 ‘저크넷’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집 한편에 있던 진료실에 손님이 왔을 때 접수직원이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되게 간단한 형태의 메신저를 개발했다. 기본적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었고, 불편함을 그냥 봐 넘기지 않는 관심과 직접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실행력의 결과다. 이런 바탕은 페이스북 탄생과 성공으로 이어졌다.

문제만 잘 풀어선 안돼

요즘은 어디서나 ‘창조’가 화두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세운 게 큰 이유지만,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 발달이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흐름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한 정권의 간판 정책은 딱 ‘5년짜리’였다. ‘동북아 금융허브’도, ‘녹색성장’도 그랬다. ‘창조경제’가 반짝 떴다가 용도 폐기되는 정치적 아젠다가 아니라 두고두고 국가 발전의 ‘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당장의 열매보다 씨앗을 뿌리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그 핵심은 교육이다. ‘남다른 꿈’을 꾸는 아이, 그 꿈을 이뤄내겠다는 열정을 가진 ‘괴짜’들을 많이 키워낼 수 있는 토양 마련이 급선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들은 문제 해결력이 OECD 28개 회원국 중 1위인 반면 적극성이나 끈기는 평균 이하로 나왔다. ‘똑똑하고 시험은 잘 보는데 딱 그것까지만!’이란 의미로 들린다. 밤 늦게까지 학원을 뺑뺑 돌아야 하는 아이들에게서 ‘제2의 저커버그’를 기대하는 건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 아닐까.

박성완 국제부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