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정보 프레임'에 갇힌 한국 금융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응을 놓고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발등의 불을 끄겠다며 허둥지둥 내놓는 대책마다 냉탕 아니면 온탕이다. 불신을 되레 키워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대응은 온탕 아니면 냉탕

금융위원회가 2차 피해를 막겠다며 전체 금융사의 텔레마케팅(TM)을 전면금지하려 했던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10만 텔레마케터의 특수성을 고려치 않은 탓에 생계 대책을 보완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고, 결국 며칠 만에 재개한다고 말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엊그제 카드 3사에 3개월 영업정지를 내리면서 실적이 없는 모집인에게도 성과급을 60% 수준으로 지급하라는 조치까지 나왔다. 물론 생계를 지원하려는 뜻이야 모르지 않지만, 초법적 관치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카드 모집인, 보험 설계사 등 특수형태 근로자는 프리랜서로, 수시로 회사를 옮기기 마련이다. 이들 인력에 대한 유지·관리는 금융업체엔 정답이 없는 해묵은 과제다. 금융당국이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보험사에 대해 적합한 정보를 이용한다는 최고경영자(CEO) 확약서를 조건으로 TM을 재개했다는 것도 허울만 좋다. 기존 영업활동의 70~80%가 사실상 중단상태라고 한다. 보험사 자체 고객정보와 제휴업체 정보가 동의를 거쳤는지 확인하는 전면 조사에 엄청난 시간이 드는 탓이다. 처음부터 해당 업체 CEO에게 맡기고 문제가 생기면 엄한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그뿐이었다. 오죽하면 금융당국이 꼼수를 쓴다는 말까지 나온다.

금융위가 국회에 보고한 개선대책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금융지주 계열사 간 정보 이용기간을 1개월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만 해도 그렇다. 정보 공유를 이렇게 막으면 금융지주회사를 할 이유가 없다. 당장 하나금융지주 같은 곳은 외환은행 카드 부문 분사, 하나은행과의 통합 등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사실 법률과 규정이 없어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금융분야에는 신용정보보호법, 비금융은 개인정보보호법이 기본이고 이외에도 정보통신망법, 금융실명제법, 전자금융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두 손으로 꼽기 힘든 정도다. 결국 관리가 문제다. 금융업체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금융 철학·원칙이 있는 것인가

물론 금융업체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고객 확대만 있었지, 고객 보호는 없었다. 소비자보호는 국제 룰이며, 특히 금융업체엔 최대의 잠재 리스크다. 이번 사태가 경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불났다고 집을 못 짓게 하고, 사고가 터졌다고 공장을 닫으라는 게 대책일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금융당국이 살 길이 열리지도 않겠지만, 그러는 사이에 금융업체는 다 죽게 된다. 카드 3사는 이미 당국의 제재를 포함해 추정 피해액이 5400억원으로 작년 순이익(5800억원)과 맞먹어 올 농사는 망쳤다는 평가다. 보험사도 상당기간 반쪽 영업이 불가피하다. 금융위가 작년 11월에 제시했던 빅데이터, 정보 공유·집중·융합 등을 통한 금융 경쟁력 강화라는 비전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물 건너갔다. 한국 금융이 정보보호 프레임에 갇혀 버린 형국이다. 금융에 대한 철학과 원칙은 있는 것인가.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