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탑골공원과 게이트볼
노인빈곤율 45.1%, OECD 국가 중 1위. 노인자살률 10만명당 80명, OECD 국가 중 1위. 우리나라의 어두운 현실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했는데, 과연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걸까? 아니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국민들이 노후에 여유있게 사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북유럽식 모델이다. 젊은 세대의 높은 세금부담을 바탕으로 노인복지를 시행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부터 많은 세금을 내왔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조세저항은 적다.

두 번째 미국-호주식 모델은 국가가 직접적인 복지혜택 대신 국민에게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통해 연금 등 노후대비 자산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미국 기업연금인 401(k) 및 호주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이 여기 해당한다.

우리처럼 유례없이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에서 북유럽식 모델은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 미국-호주식 방식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이 같은 국가지원-자기주도형 노후대비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몇 가지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

첫째, 미래를 보는 세금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연금 관련 정책은 지나치게 현재의 수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축액에 소득공제를 해주던 연금 정책은 올해부터 세액공제로 바뀌었다. 노후대비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득공제장기펀드의 경우 소득이 5000만원 이하인 근로자에게만 혜택을 준다. 연금저축액 증가를 유도할 세제지원을 줄이면 현재의 국가재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향후 노인복지를 위한 재정부담은 커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연금저축액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는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이 확정금리상품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를 투자상품으로 전환, 저금리 저성장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또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해 규모의 경제와 경쟁을 통해 근로자의 퇴직자산을 불려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 하면 떠오르는 우울한 탑골공원의 이미지를 게이트볼을 즐기는 여유로운 노인들의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늦지 않았다. 당장 효율적인 세금 정책과 연금 정책을 시작한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족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우리 국민에게 은퇴 후 행복한 노인의 나라를 선사할 수 있다.

박종수 < 금융투자협회장 parkjs0908@kofi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