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한경에세이] 탑골공원과 게이트볼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노인빈곤·자살률 1위의 어두운 현실
    연금·세금정책 통해 미래 준비해야

    박종수 < 금융투자협회장 parkjs0908@kofia.or.kr >
    [한경에세이] 탑골공원과 게이트볼
    노인빈곤율 45.1%, OECD 국가 중 1위. 노인자살률 10만명당 80명, OECD 국가 중 1위. 우리나라의 어두운 현실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했는데, 과연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걸까? 아니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국민들이 노후에 여유있게 사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북유럽식 모델이다. 젊은 세대의 높은 세금부담을 바탕으로 노인복지를 시행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부터 많은 세금을 내왔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조세저항은 적다.

    두 번째 미국-호주식 모델은 국가가 직접적인 복지혜택 대신 국민에게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통해 연금 등 노후대비 자산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미국 기업연금인 401(k) 및 호주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이 여기 해당한다.

    우리처럼 유례없이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에서 북유럽식 모델은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 미국-호주식 방식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이 같은 국가지원-자기주도형 노후대비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몇 가지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

    첫째, 미래를 보는 세금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연금 관련 정책은 지나치게 현재의 수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축액에 소득공제를 해주던 연금 정책은 올해부터 세액공제로 바뀌었다. 노후대비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득공제장기펀드의 경우 소득이 5000만원 이하인 근로자에게만 혜택을 준다. 연금저축액 증가를 유도할 세제지원을 줄이면 현재의 국가재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향후 노인복지를 위한 재정부담은 커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연금저축액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는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이 확정금리상품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를 투자상품으로 전환, 저금리 저성장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또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해 규모의 경제와 경쟁을 통해 근로자의 퇴직자산을 불려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 하면 떠오르는 우울한 탑골공원의 이미지를 게이트볼을 즐기는 여유로운 노인들의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늦지 않았다. 당장 효율적인 세금 정책과 연금 정책을 시작한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족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우리 국민에게 은퇴 후 행복한 노인의 나라를 선사할 수 있다.

    박종수 < 금융투자협회장 parkjs0908@kofia.or.kr >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붉은 말의 해, 다시 뛰는 K패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과거 신정과 구정으로 나뉘어 설을 두 번 쇠던 우리나라에서 이 인사는 전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체감상 석 달 가까이 이어지곤 했다. 그런데도 이 말이 유독 싫증 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해가 바뀌는 동안 몇 번을 들어도, 몇 번을 건네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새해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 시간이라서일 것이다.필자는 말띠다. 올해는 병오년, 붉은 말의 해다. 그래서인지 새해 첫날 이렇게 지면을 통해 인사를 전하는 이 순간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자체가 필자에게 허락된 올해의 첫 번째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우리에게 설날은 단순한 연휴가 아니라 한 해의 마음가짐을 새로 고쳐 입는 날이다. 새해를 맞아 새 옷을 입는 ‘설빔’의 풍습처럼, 우리는 해마다 새 마음과 새 각오로 자신을 단장해 왔다. 패션이 단순한 옷을 넘어 태도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언어라면, 설빔은 그 상징이 가장 잘 살아 있는 문화다.기업을 경영하는 대표로 그리고 패션산업을 대표하는 협회 회장으로 새해를 맞으며 필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나는 어떤 자세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할까.’한 단어로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자각에서 오는 ‘절실함’이었다. 그러나 이 절실함은 불안이라기보다 다시 단단히 준비하자는 다짐에 가깝다.2026년을 향한 한국 패션산업의 환경 역시 새 옷을 갈아입고 있다. 세계 경제는 회복과 조정의 경계에 서 있고, 소비는 필요와 가치 중심으로 재편되며 보다 신중해졌다. 지금은 단순한 경기의 오르내림을 논하기보다 산업의

    2. 2

      [데스크 칼럼] 2026년에도 몰래 증세한 한국

      미국인들은 연말이 되면 미 국세청(IRS)의 발표를 유심히 살핀다. IRS는 매년 말 이듬해 적용될 소득세 과세표준(과표) 구간을 공개한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이를 자동으로 높이는 것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명목소득이 늘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감세(소득세 최고세율 39.6%→37%)가 시행된 2018년 소득세율 35%가 적용된 과표 구간은 20만~50만달러(1인 기준)였다. 이 구간은 2025년 25만525~62만6350달러로 높아졌고, 2026년에는 25만6226~64만600달러로 더 올라간다. ‘숨은 증세’(stealth tax)를 막는 이런 투명한 조세 시스템 덕분에 미국인들은 실질소득이 늘지 않았다면 세금 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 숨은 증세 없는 선진국영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몇 년을 끌어온 증세 방안을 발표했다. 심각한 재정적자로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집권 노동당이 선택한 핵심은 소득세 과표 구간과 연금보험 공제 한도를 한시적으로 동결하는 것이었다. 법정 세율을 높이진 않았지만, 인플레이션과 임금 상승에 따라 실질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만든 것이다. 영국 재무부는 이런 조치 등을 통해 2029~2030년 회계연도까지 연간 260억파운드(약 50조5000억원) 규모의 세수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2026년 첫날이 밝았다. 한국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증세가 이뤄졌다. 소득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의 과표가 자동 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표는 어쩌다 한 번 손볼 뿐이다. 특히 35%의 초고율이 적용되는 소득세 과표 ‘8800만원 초과’는 2008년 세법 개편 이후 20년이 거의 다 되도록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부

    3. 3

      [조일훈 칼럼] 청년과 기업을 위한 나라여야 한다

      모든 것이 한결같은, 정상(定常) 상태라는 것은 없다. 항구적 경계라는 것도 없다. 종전을 앞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안다.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수많은 젊은 목숨의 희생에도 영토의 상당 지역을 내줘야 할 판이다. 그러고도 안전과 평화에 대한 보장은 요원하다. 한국에서 약 7700㎞ 거리의 우크라이나 국경 파괴는 전 세계적인 군비 확장과 북·러 군사동맹이라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조선·방산 특수라는 망외의 효과를 보고 있지만 한국의 안보 지형도 급변했다. 핵을 거머쥔 김정은은 러시아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확보하면서 한반도 신냉전 구상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판이 흔들리고 기존 질서가 해체되면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분출된다. 우리는 지난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주에 꽤나 시달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약소국 설움’ 운운할 정도로 미국은 고압적이고 일방적이었다. 이제 엄청난 돈과 일자리가 미국으로 옮겨갈 판이다. 대미 투자 역시 양날의 칼이다. 실패 위험을 고스란히 안는 대신에 미국의 첨단기술을 우리 산업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중 사이 샌드위치 운명미국이 한국 일본 같은 우방을 상대로 실리를 챙기는 동안에도 중국의 패권 시계는 빠르게 돌아갔다. 아직 미국을 정면으로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지만 중국은 별로 약점이 없는 나라다. 노동-기술집약적 산업을 동시에 영위하면서도 거대 창업국가의 기업가정신이 들끓는다.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역전시키고 있다. 중국의 한국 추월은 ‘예정된 미래’가 아니라 ‘완료된 현실’이다. 새로운 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