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자본잠식·부도나도 '즉시 퇴출' 안한다
마켓인사이트 1월20일 오후 2시15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풍림산업은 2012년 5월3일 최종부도 사실을 공시했다. 거래소는 같은 날 풍림산업의 증시 퇴출을 결정했다. 소액주주들은 정리매매를 통해 헐값에 주식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주주들은 두 번 울어야 했다. 상장폐지 결정 1주일 뒤 법정관리가 시작된 풍림산업이 지난해 4월 11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조기졸업해 회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 같은 ‘기계적 상폐’로 인한 투자자들의 피해가 사라질 전망이다. 자본잠식이나 부도 등 현행 규정상 상폐요건이 발생해도 즉각 퇴출시키지는 않고 ‘실질심사’를 통해 회생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기계적 상폐’ 부작용 많아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실질심사제도를 기업회생 중심으로 개선하고, 상장폐지요건 해당 기업에 대한 전면 실질심사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사업계획을 추진 중이다. 부실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증시 퇴출 조건과 절차를 전면 개편하는 게 골자로 연내 방안을 확정해 금융당국의 승인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상장 규정에선 최근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감사의견 부적정 △완전 자본잠식 △2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 △2년 연속 매출 50억원 미만 △부도 등에 해당되면 즉각 퇴출대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요건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부도나 감사의견 거절 등 형식적 요건이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로 볼 수 없다는 게 이런 주장의 근거다.

형식적 요건이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다함이텍은 순자산 3000억원, 주당 순자산가치가 7만5000원을 넘는 ‘알짜 자산주’였다. 하지만 2년 연속 매출 50억원을 올리지 못해 지난해 4월 퇴출됐다. 회사가 상폐되면서 소액주주는 정리매매 동안 원래 주가보다 최대 37% 낮은 가격에 보유주식을 대주주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퇴출 질적 심사 가미…회생 유도

개편안은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활할 수 있는 ‘개방형’ 상장폐지 규정이 될 전망이다.

퇴출 요건이 발생하면 회생 가능성을 심사한 뒤 매매를 정지시킨 채 자구 회생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실질심사는 양적 기준이 아닌 매출 부풀리기나 횡령, 배임 등 질적 기준을 심사해 상장유지 적격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거래소는 담당 임원과 변호사, 회계사, 학계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회’를 2009년부터 가동 중이다.

한편에선 즉시 퇴출제도를 없앨 경우 투자자 보호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가능성 있는 기업에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은 거래 활성화에도 긍정적”이라며 “실질심사 조건을 다양화한다면 형식 요건이 없어지는 데 따른 부작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조진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