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통상임금 문제요? 받아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봅니다. 대신 노동유연성은 열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임금을 얼마나 주느냐가 기업경영의 핵심요소는 아니거든요. '필요한 사람'의 확보 여부가 더 중요하죠. 노동경직성이 크면 오히려 핵심인재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듣는다] 김창봉 기업경영학회장 "통상임금 양보, 대신 노동유연성 확보하라"
김창봉 한국기업경영학회 신임 회장(중앙대 교수·사진)은 통상임금 문제를 '기브&테이크'로 풀어 설명했다. 상여금과 수당을 포함해 덩치가 커진 통상임금이 당장 기업에 부담이 되지만 내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양보하고, 대신 노동유연성만큼은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발상의 전환도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도 경제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기업 논리로는 값싼 해외업체에 아웃소싱 주는 게 합리적이지만, 대기업이 SCM(공급망 관리)에서 국내 중소기업과 네트워킹 해 지원하는 것도 일종의 경제민주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졸업'을 거부하는 중소기업은 성과평가에 의한 '인&아웃' 구조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중소기업 범주에서 혜택을 받아 큰 기업은 제때 졸업해 신규 시장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기업이 들어와 지원받는 시스템을 정착시키자는 것. '한국형 히든챔피언' 역시 이러한 선순환구조에서 나올 것이란 전망도 곁들였다.

새해 1일 임기를 시작한 김 회장을 서울 역삼동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통상임금 문제,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기업마다 특성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 통상임금 확대가 부담 되겠지만, 가계 소비가 증가해 내수 소비가 활성화되는 장점도 있지 않느냐. 통상임금 문제에 과민반응하기보다는 '선제적 구조조정' 같은 부분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 길게 보고 감당할 문제란 얘긴가.

"기업경영에선 임금을 얼마나 주느냐보다 '필요한 사람'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더 걱정할 부분은 노동유연성이다. 그 부분이 경직돼 있다. 통상임금은 양보하고 노동유연성은 얻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기업은 투명하게 경영하고 노조도 이런 부분에 대해선 인정해주는 식으로 상호 신뢰관계가 구축돼야 한다."

- 정년 연장, 일자리 확대 등에도 기업은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당연히 압박이 있겠지만, 기업도 이윤 추구만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하는 시대다.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으로 본다. 사실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공이 크지 않나. 그런데도 대기업 하면 일반 국민들에겐 이미지가 안 좋다. 일부 재벌 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같은 걸로 공정경쟁 기회를 박탈하고 중소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부분은 고쳐야 한다."

- 임금이나 고용 문제에서 기업이 양보한다면 얻을 건 무엇인가.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온 배경을 잘 보자. 대기업이 여력이 있어도 투자를 못하고 있다. 이유는 '사용자에 대한 저항'인데 원인을 잘 분석해야 한다. 대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도 기업경영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이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이 정부 들어 한화CJ그룹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 개별 기업의 부담과 사회적 비용은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추구는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다. 당장엔 파트타임을 많이 쓰면 좋지만 빈부격차 증가의 요인이 된다. 일례로 오바마의 헬스케어 정책은 의료보험만큼은 정부가 하려는 것 아닌가. 중산층이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크게 보면 이게 모두 비용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은 잘하고 있다."

- 파트타임 노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노동유연성 확보 주장은 상충되는 것 같은데.

"노동유연성 확보는 앞서 얘기했듯 선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체질 개선을 하자는 얘기다. 우리는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기업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아닌가? 그건 너무 늦다. 기업경영 관점에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 그렇기 때문에 투명경영과 노사 신뢰관계 구축이 더 중요하다."

- 최근 중소기업 범위 개편안이
[전문가에게 듣는다] 김창봉 기업경영학회장 "통상임금 양보, 대신 노동유연성 확보하라"
발표됐는데, 여전히 중견기업 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다.

"대학 교수 입장에서 보면 대학생이나 중소기업이나 비슷한 상황 같다. 졸업해 나가면 두렵고 만족도가 부족하니 자꾸 졸업을 유예하려 한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중소기업의 정부 수혜 액수나 기간, 미래산업 적합도 등을 평가해 졸업할 수 있는 곳은 졸업시키고 창업 기업이나 새로운 산업을 진입시켜 육성해야 한다. 인&아웃이 가능하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정부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보나.

"중소기업 육성 방향 자체는 올바르게 가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 여러 번 주장했듯 성과평가를 통해 등급 매겨 성적 좋은 중소기업은 졸업시키고, 그렇지 못한 곳은 페널티도 줘야 한다. '피터팬 콤플렉스'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이유로 주저할 일만은 아니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파트너십을 맺어 진출하는 등 여러 길이 있다."

- 그래야 '히든챔피언' 같은 강소(强小)기업도 탄생할 수 있지 않겠나.

"히든챔피언이 되려면 적어도 매출 구조가 1조 원 정도는 돼야 한다. 중견기업 규모다. 결국 중소기업을 졸업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기술력도 있어야 한다. 해외 학자들 얘기를 들어봐도 수출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중견기업들이 허리 역할을 해주는 게 필수적이다."

- 한국형 히든챔피언이 될 만한 곳은 없나. 성공요건은 뭐라고 보는지.

"국내 자동차 부품·소재 분야는 경쟁력이 상당하다. 독일이나 일본 완성차 업체에 납품할 만큼 성장하면 한국형 히든챔피언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최근 한국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같은 공기업도 히든챔피언 발굴·지원에 힘쓰고 있다. 여건은 만들어졌으니 중소기업의 의지와 기술력이 주요 관건이라 본다. 기술력은 연구·개발(R&D), 특히 산학협력이 더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 국내 경제구조가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민주화 얘기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장점이 많다. 실제로 연구하면서 살펴보니 SCM 구축 과정에서 삼성, 현대, 포스코 등이 협력업체에 대해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도입을 지원했다. 그런 상생 정신이 필요하다. 강한 대기업은 끊임없이 중소기업을 발굴해 네트워킹 해야 한다."

- 대기업도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인가.

"경제민주화란 게 무조건 뭘 내놔라, 포기해라, 이런 인식은 잘못됐다. 대기업의 국내 중소기업 발굴·지원도 일종의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파이를 키워 나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기업 논리로만 보면 싼 해외 부품을 조달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데도 굳이 국내 중소기업에 ERP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네트워킹 해 체질을 강화해 온 것은 평가해줄 부분이다."

- 경제위기에 대처할 역량을 키우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경제구조가 상당히 경직돼 있다. 초국적 글로벌 기업 위주로 육성하다 보니 중소·중견기업 몫을 해외에 아웃소싱 주면서 제대로 육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닥쳐보니 어떤가. 허리가 없다. 원천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는데 부품·소재 같은 부분이 없으니 그 비용을 견뎌내지 못하고, 고용 창출도 안 되는 것이다."

- 새해 들어 정부가 공기업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당연히 기업의 문제점이나 부작용에 대해선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규제가 돼 불이익을 받는 건 기업경영에 안 좋다. 규제를 푼다고 하는데 이게 오히려 새로운 규제를 또 만드는 측면이 있다. 공기업 부채가 개별 책임이 아닌 부분도 있고. 정부가 바뀌어 잘해보려 하는 건 좋지만, 어쨌든 기업 문제가 지나치게 관(官) 주도가 돼선 곤란하다."

- 관 주도의 간섭을 줄이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공기업뿐 아니라 재계 총수들도 힘든 상황이다. 새 정부에서 정책이 바뀔 수 있지만 근본적 문제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관 주도 형태로 경영에 간섭하는 것 아닌가, 그런 우려는 있다. 기본적으로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대통령도 장관도 바뀌지만 정부 관료는 그대로 있지 않느냐."

- 학회는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가.

"해외 사업 추진과 일자리 창출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이 지역연구를 해야 할 시점 같다. 학회 차원에서 한국무역협회와 같이 해외 진출과 일자리를 주제로 한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인턴십에 대한 대학생들의 수요는 많은데 정부기관 사업은 부족해 보인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과 힘을 모아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 원조(ODA) 개념과 결합한 해외 지역연구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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