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이 방통위 힘만 키우는 보조금 규제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7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에 역대 최대 규모인 106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27~29일 또 보조금 전쟁이 벌어졌다. 규제 효과가 불과 반나절도 가지 못한 셈이다. 휴대폰 보조금 규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과 함께 차라리 규제를 없애고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말 보조금 시장 과열

통신사들은 방통위의 제재안 의결 내용이 발표된 직후인 27일 오후부터 기다렸다는 듯 보조금 수위를 높였다. 조사가 막 끝난 데다 주말 감시가 소홀할 것으로 보고 보조금 경쟁에 나선 것이다. 실적에 민감해지는 월말, 연말 효과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대리점은 방통위가 의결 내용을 공식 발표한 오후 2시 이전부터 “곧 보조금을 증액할 것”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판매점들에 보냈다. 이후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오후 2시부터 몇몇 단말기 보조금을 올렸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오갔다.

A통신사는 LG전자의 옵티머스G를 번호이동(통신사를 바꿔 가입하는 것), 월 3만4000원 요금제 가입 조건으로 공짜에 팔았다. 팬택 베가아이언도 번호이동, 월 6만9000원 요금제 가입 조건으로 1만원에 판매했다. 신형 스마트폰 보조금도 대폭 올렸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는 할부원금 59만원에 거래됐다. 갤럭시노트3의 출고가가 106만7000원임을 감안하면 47만7000원의 보조금이 붙은 셈이다. 방통위가 정한 보조금 상한액인 27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B통신사도 베가시크릿업에 상한액 27만원의 2.8배에 달하는 75만원의 보조금을 투입, 19만9000원에 판매했다. LG G2엔 62만5000원의 보조금을 실어 32만9000원에 팔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주말 보조금 경쟁이 치열했다”며 “한 통신사는 이번 주말에 빠져나간 가입자가 전 주말의 두 배 가까이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고 전했다.

◆하루도 못 가는 규제 효과

방통위는 올 들어 세 차례 통신사에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를 가했다. 이번 제재를 포함해 방통위가 올해 통신 3사에 내린 과징금은 총 1786억70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매년 수차례 제재를 가해도 효과는 반짝하는 데 그쳤다. “방통위 규제 약발이 하루도 못 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실효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주기적으로 보조금을 규제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사상 처음 통신사 한 곳만 골라 본보기로 단독 영업정지를 부과하는 등 제재 수위를 높였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래창조과학부에 여러 기능을 떼준 방통위가 존재감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했으나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통신사들은 겉으로는 “과징금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어든다”고 하소연하지만 속으로는 규제를 바란다. 규제를 철폐하면 보조금 경쟁이 더 치열해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결국 휴대폰 보조금 규제는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통위와 적당한 규제를 바라는 통신사 간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지적이 많다.

◆대리점·판매점만 ‘골병’

이런 가운데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와 골목상권인 대리점, 판매점이란 분석이 나온다. 보조금 규제로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더 싸게 살 기회를 잃는다. 대리점과 판매점은 규제 권력과 통신사 권력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보조금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시행한 폰파라치(과도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온라인 휴대폰 판매점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에 걸리면 통신사가 벌금을 내도록 돼 있지만 결국 통신사가 걸린 대리점과 판매점으로부터 벌금을 받아낸다”며 “대리점과 판매점만 죽어나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