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씨의 ‘무제’.
천경자 씨의 ‘무제’.
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여성의 얼굴을 마술처럼 포착했다. 삶의 고달픔에 지쳐 있지만 여인의 표정에서 넘쳐나는 자애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잡아낸 ‘국민 화가’ 박수근 화백의 작품 ‘노상’이다.

서민 생활의 애환을 화면에 묘사한 박 화백을 비롯해 이인성 천경자 권순철 이동재,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와 가와시마 히데아키, 중국 화가 장샤오강 펑정지에 웨민쥔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이 현대인의 얼굴 그림을 모은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내년 1월5일까지 펼쳐지는 ‘면면(面面) 시대의 얼굴’전에는 내로라하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국내외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 50여점이 걸렸다.

화가들의 다양한 얼굴 그림에는 역사의 흔적뿐만 아니라 삶의 애환과 향기가 집약돼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 천경자 씨의 1970년작 ‘무제’는 여인의 얼굴을 통해 작가 자신의 감정과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문학적 사유 등을 폭넓게 보여준다. ‘조선의 고갱’으로 불리는 이인성 씨의 ‘소녀상’에서는 인간의 깊은 내면 세계와 우리 시대의 정신적인 좌표를 함께 짚어볼 수 있다.

향토적 색채가 진한 생활 정경을 즐겨 다룬 박상옥, 늙고 주름진 얼굴 등을 생생히 그려낸 권순철, 영화 ‘8마일’의 한 장면을 알파벳으로 표현한 이동재 씨 등의 인물화 역시 내면에 담긴 희로애락을 대담한 색채와 힘찬 붓터치로 형상화했다.

희망과 절망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얼굴을 풍자와 해학적으로 작업한 작품도 여러 점 나와 있다. 악동 같은 표정의 아이를 만화적 기법으로 그린 일본 작가 나라의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서로 다른 작풍(作風)을 가진 여러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한 인간에 대한 깊고 진지한 해석을 감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