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
보티첼리의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의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
이탈리아 피렌체의 중심부 시뇨리아 광장을 지키는 다비드상은 발가벗은 몸으로 골리앗의 잘린 머리를 밟고 서 있다. 실핏줄까지 드러난 그의 근육질 몸매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와 미켈란젤로의 열정, 단테의 사랑과 푸치니의 아름다운 아리아가 수놓은 피렌체. 세월이 흐를수록 강력해지는 문화 콘텐츠의 위력을 실감하는 도시다.

다비드상의 전설

이탈리아 지도 부츠
이탈리아 지도 부츠
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문화를 부르짖은 르네상스의 불길은 피렌체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메디치 가문이 있다. 평민층이었던 메디치가는 13세기경부터 모직물과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다. 그들은 당대의 학자와 예술가들을 뒷받침하며 르네상스 문화를 이끌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피렌체 문화유산이 더욱 위대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렌체를 여행하는 동안 모두 3개의 다비드상을 만나게 된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청동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의 세 번째 작품이다. 다비드상이 제일 처음 세워진 곳은 시뇨리아 광장이다. 야외에 설치됐던 이 작품은 훼손을 우려해 현재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서 있는 동상은 그 후에 제작된 복제품이다.

두오모 앞 거리의 화가
두오모 앞 거리의 화가
400여년 전 다비드상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신체 노출은 논란이 됐다. 가톨릭교회는 선정성을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그 후 몇 차례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이어졌다.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이 다비드상을 빌려 전시했을 때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관람에 대비해 신체 주요 부분을 가리려고 월계수잎 장식품부터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정복 3000주년을 맞았을 때 다비드상 복제품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나체라는 이유로 거절된 일도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이후로 옷을 입은 다비드상이 제작되기도 했지만 나체의 다비드만큼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다.

우피치미술관에서 만난 2점의 비너스

아르노강 위에 놓인 베키오다리
아르노강 위에 놓인 베키오다리
피렌체의 예술 명소 우피치미술관은 르네상스 회화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수많은 회화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끄는 작품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는 누드로 등장한다. 이 또한 신 중심의 세계관이 팽배하던 중세 문화에 반기를 든 르네상스 정신에 불을 붙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너스를 관능적으로 그린 그림을 발표하는 순간 보티첼리는 교회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교회에 반하여 시민을 선동하는 죄를 저지른다는 비판도 맹렬했다. 메디치 가문의 엄호를 받으며 작품 활동을 벌였던 보티첼리는 후에 그 가문이 몰락하고 교회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자 한동안 붓을 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을 찬미하는 그림만 그리겠노라 결심하고 다시 창작활동에 나섰지만 이후의 그림으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피렌체 대성당 앞을 지나는 마차
피렌체 대성당 앞을 지나는 마차
우피치미술관에 전시 중인 티치아노의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에도 비너스가 등장한다. 비너스는 손으로 신체 주요 부분을 가린 채 요염하게 누워 있다. 가려진 부분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관람객을 쏘아보는 그녀의 눈빛이 강렬하다. 이 비너스는 당시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음은 물론 후에 인상파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나 프란시스코 고야의 ‘마하 부인’을 탄생시키는 모티브가 됐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우피치미술관의 두 비너스는 시대에 앞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강조한 작품이다.

메디치가문의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는 1743년 사망하면서 우피치미술관을 비롯한 가문의 전 재산을 피렌체시에 기증했다. 단서는 오직 하나. ‘이 유산들은 절대 피렌체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이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피렌체를 방문해야 한다.’ 이 한마디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영원한 꽃밭이 됐다.

단테의 사랑이 새겨진 베키오 다리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베키오 다리에서 아르노 강으로 떨어져 죽고 말겠어요.’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아리아의 한 대목이다. 극중 여주인공 라우레타는 아버지 잔니 스키키에게 연인 리누치오와의 결혼을 허락받고자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한다. 절절한 노랫말에 감동한 관객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한다. ‘사는 게 뭐 다 그렇지’라고 치부하기엔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는 장면이다. 푸치니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서정이 깃든 아리아를 음미하며 아르노강 위에 놓인 베키오 다리를 걷는다.

금은 보석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부산하기만 한 베키오 다리에서 르네상스 시인 단테의 추억을 만난다. 그는 연인 베아트리체를 이 다리에서 처음 마주쳤다고 한다. 그녀를 향한 단테의 사랑이 얼마나 지대했던지 베아트리체는 뭇 남성들에게 지고지순한 연인의 대명사가 됐다. 피렌체, 인간을 아름답고 숭고하게 여기는 르네상스의 에너지를 영원히 간직한 도시다.

피렌체(이탈리아)=유연태 여행작가 kotour21@naver.com

단테의 사랑, 미켈란젤로의 열정 살아 숨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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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로 가는 직항은 없다. 인천에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도시를 경유해 피렌체로 들어가야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저비용항공(LCC)을 이용해 갈 경우 피사로 입국해 유명한 ‘피사의 사탑’을 보고 피렌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기차를 타고 피렌체를 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이탈리아 철도청 사이트(trenitalia.com)에서 기차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피렌체시 동남쪽의 미켈란젤로 언덕에 조성된 미켈란젤로 광장은 시가지 전망대 구실을 한다. 피렌체 중앙역인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13번 시내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우피치미술관을 찾아갈 때는 ‘유럽미술관박물관여행’(낭만판다), ‘천년의 그림여행’(예경) 등의 책자가 도움이 된다. 구시가지에 규모는 작지만 다소 저렴한 호텔이 많다.

피렌체 대성당 주변에 유서 깊은 상점과 식당들이 많다. 피렌체식 소갈비구이인 ‘비스테카 알 플로렌티나’, 올리브유를 이용한 매운 영계튀김인 ‘폴로 알 디아볼로’, 흰콩수프인 ‘주파 디 파지올리’ 등의 음식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