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퍼 바라카 가든에서 바라본 발레타와 스리시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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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지중해의 블루를 품은…몰타
몰타는 꼭꼭 숨겨두고 언제든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곳, 그래서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동하는 곳이다. 비행기가 지중해 한복판에 있는 이 아름다운 섬에 내리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성 요한 기사단, 프랑스, 영국의 지배를 거쳐 몰타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보석같이 반짝인다.

기사들의 도시, 발레타


성 바울 카타콤
성 바울 카타콤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템플 기사단, 독일 기사단과 함께 세계 3대 기사단 중 하나인 성 요한 기사단의 본거지다. 성 요한 기사단은 11세기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의료봉사로 시작해 십자군전쟁 때 군사력을 갖춘 종교 기사단으로 거듭났다. 이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했고 1530년 스페인 황제 찰스 3세는 당시 스페인령이던 몰타를 기사단에 하사했다.

화려한 성 요한 성당의 내부
화려한 성 요한 성당의 내부
나폴레옹이 침략한 1798년까지 이곳은 기사의 통치 아래 있었다. 이 때문에 발레타의 중심 볼거리 중에는 기사단과 관련된 유적이 많다.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성 요한 성당은 전 유럽에 걸쳐 초기 바로크 건축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화려하고 진귀한 볼거리가 많다. 남성적 느낌이 짙게 배어나는 외관과 다르게 내부 장식은 화려하고 우아하다. 벽면 전체는 온통 금과 은으로 조각돼 있고 성당 바닥 아래에는 몰타를 수호한 기사들의 무덤이 있다. 무덤 위에는 각 기사들의 업적과 일생을 재현한 모자이크 장식이 그려져 있어 그 화려함을 더하다. 성당 양 옆면으로는 각 나라에서 파송된 기사들의 예배실 8개가 늘어서 있다.

기사들은 자신이 소장한 예술품을 기부해 성당 내부를 장식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초기 바르크의 대표 화가인 카라바조가 기사들의 후원을 받아 그린 ‘세례 요한의 참수’다. 5m의 화폭에 명암 대비를 극명하게 그려낸 참수의 현장 앞에 서니 숨이 멎을 것 같은 위압감이 든다. 카라바조는 그림 하단에 세례 요한의 목에서 흐르는 피로 자신의 이름을 썼는데, 이는 모든 작품을 통틀어 그가 남긴 유일한 서명이다.

성 요한 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랜드 마스터 팰리스는 1604년 기사단의 궁전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기사단의 역사를 빼곡히 모아 전시한 박물관과 대통령궁을 겸해 사용하고 있다.

몰타의 전경을 감상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어퍼 바라카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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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습조차 그림이 되는 곳
 스리 시티의 골목
스리 시티의 골목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파견된 기사들이 이 땅을 수호하게 만든 더 큰 동력은 어퍼 바라카 가든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 발레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이 정원에서는 지중해가 감싸안은 발레타와 건너편의 스리 시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스리 시티는 바다 쪽으로 뻗어 나온 비토리오사만, 셍그리아만, 코스피쿠아만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기사단의 주거 지역이었던 이곳은 시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규모지만 풍경은 다채롭다. 유럽 각국에서 지중해를 건너온 요트들이 빼곡히 정박된 항구와 카지노 불빛으로 반짝이는 바닷가 너머로 좁은 골목들이 뻗어 있다.

일요일, 마샤슬록 시장의 모습
일요일, 마샤슬록 시장의 모습
모랫빛 석회암 건물의 벽면 위로 볼록 솟은 색색의 아름다운 발코니를 구경하는 것은 골목을 거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발코니는 몰타를 상징하는 명물로 발레타를 비롯해 스리 시티와 앞으로 소개할 임디나와 라밧지역 어느 곳에서든지 볼 수 있다. 아름다운 발코니를 통해 투영된 수없이 많은 몰타의 삶은 이곳이 다른 유럽에 비해 더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다.

세인트 줄리앙스는 몰타의 밤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시쳇말로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려는 말티즈(몰타 사람을 일컫는 말)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세인트 줄리앙스다. 5성급 호텔들을

몰타의 상징인 발코니
몰타의 상징인 발코니
중심으로 고급 레스토랑과 펍, 바들이 무수히 많다. 지중해 밤바람을 맞으며 해안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좋고, 힐튼호텔 꼭대기에 있는 바에서 몰타의 야경을 즐겨도 좋다. 해안 언덕에 위치한 레스토랑 ‘라 돌체 비타’는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과 분위기가 모두 일품이다. 브래드 피트가 영화 ‘트로이’를 촬영하기 위해 몰타에 머무는 동안 매우 자주 들른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발레타에서 일요일을 보낸다면 마샤슬록 어시장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시간을 박제한 도시, 임디나

기사단이 발레타로 입성하기 전, 로마 통치하에 있던 몰타의 수도는 임디나였다. 몰타 섬의 중앙,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이곳은 귀족의 도시이자 고요의 도시로 불린다. 9세기에 건설한 석회암 성벽의 말간 모랫빛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고풍스럽게 빛난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길이 유선형으로 굽어 있다. 골목은 넓어졌다 좁아지기를 반복하며 굽이쳐 흐르는 개울을 닮았는데 이렇게 건설한 이유가 있다. 성곽으로 적이 침입할 경우 적의 마차 길을 끊고, 적이 쏜 화살과 총을 쉽게 피하고 숨기 위해서다.

다채로운 외형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골목은 기능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숨막히게 아름답다. 1000년의 시간 동안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바람을 견디기 위해 외벽에 덧칠한 올리브기름이 라임 빛깔 석회암에 스며 은은한 광택을 발한다. 출입문, 문 손잡이, 창틀과 창문까지 건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고상하고 기품이 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사물이 뿜어내는 특유의 아우라는 그 어떤 위대한 화가의 묘사로도 범접할 수 없을 것이다. 골목을 뚜벅뚜벅 걸으며 지중해의 바람과 태양 아래 몸을 맡기고 오감으로 느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몰타의 전경을 감상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어퍼 바라카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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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라밧
팔라초 팔슨 저택은 민간에게 개방된 귀족의 실제 저택이다. 당시 귀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임디나는 몰타의 비벌리힐스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지만 귀족의 후손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임디나가 특별한 이유는 성 바울 교회가 이곳에 있기 때문. AD 60년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던 중 난파한 멜리데 섬이 바로 몰타다. 바울은 당시 몰타를 관할하던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앓던 열병을 고쳤고 이후 보블리오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 사건으로 몰타는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 관문이자 성지가 되었다.

임디나가 귀족의 주거지라면 성곽 주변으로 자리잡은 라밧은 서민들의 거주 공간이었다. 라밧은 몰타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동네. 특히 파루찬 과자점은 대를 이어 몰타 전통 누가를 만들어 파는데 한번 맛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오묘한 단맛이 매력적이다.

라밧 시내에 있는 성 바울 카타콤은 바울이 라밧에 사는 동안 머문 지하 동굴이다. 이후 사람들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이곳에서 숨어살다 생을 마감하고 묻혔다.

몰타=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