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不服의 고질, 너무 지겹다
대학교수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국민행복시대’ 선언으로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출범을 알린 이후 지난 1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보여주듯 행복은커녕 불안에 휩싸인 연말이다. 노후준비도 포기한 채 힘들게 대학 졸업시킨 자식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데 나는 곧 직장에서 떨려나야 하는 부모, 그 아들딸들이 갖는 두려움과 고통의 현실이다. 집값은 떨어지고 전셋값만 뛰어 집을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빚에 짓눌려 빈곤으로 추락하는 아득한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철도파업은 혹한 속 서민들의 일상적인 출퇴근길까지 위협하고 있다.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인사와 정책 등에서 퇴행했음을 비판한 것이라고 한다. 썩 마땅해 보이지는 않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의 불통(不通) 정치와 불신을 자초한 사례들을 일일이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사 실패, 정책의 난맥상이 불러들인 신뢰상실의 틈새를 비집고 터무니없는 철도·의료 민영화 괴담이 퍼져나가는 것은 다시 촛불시위를 책동하는 반민주 세력의 ‘의심암귀(疑心暗鬼)’ 술책이다. 그 말도 안되는 광우병 괴담과 촛불로 5년 전 이명박 정권이 한 방에 간 국면을 재현하려는 위험한 장난이다.

사실 지난 1년 박근혜 정부가 뭘 잘해왔는지 손꼽기 주저된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외교와 대북정책인데, 그건 원칙의 문제였지 정책의 성과라고 보기 어렵다. 나머지 분야의 성적표는 실망스런 수준이다. 슬로건으로 삼은 창조경제는 그게 뭔지 아직 손에 잡히는 게 없고, 일자리 만들기는 효과가 의문시되는 공공 중심의 시간선택제 정책 말고 뭐가 있나 싶고, 공기업 개혁의 칼을 빼들었지만 잇따른 낙하산 인사로 벌써 공허해 보인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시스템 구축을 위한 규제개혁은 아예 뒷걸음치고 있다.

그럼에도 한참 나빠졌다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51.8%이고, 반사이익을 얻어야 마땅한 제1 야당인 민주당 지지율은 겨우 23.8%(리얼미터 조사)인 것은 정말 기이하다. 실체도 없는 ‘안철수 신당’ 그늘이라면 민주당 지지율은 다시 반토막 난다. 1년 전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 48%가 이렇게까지 초라하고 무참하게 무너질 수 있을까. 해석한다면 지금 박근혜 정부 지지율은 역설적으로 헛발질만 거듭하는 민주당에 대한 싸늘한 여론이 떠받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민주당은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위기, 독재의 부활이라며 핏대를 높인다. 글쎄 그 타령 30년쯤 전에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그들은 시곗바늘을 홀로 거꾸로 돌린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다. 험하고 천박한 막말과 대통령 깎아내리기는 결국 ‘대선 불복(不服)’의 획책이다. 국가정보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댓글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엄정한 사법처리 대상이다. 그러나 그 댓글 내용이 무엇이었든, 건수가 몇천~몇만개였든, 그 때문에 그들이 지난 대선 때 100만표 이상의 차이로 진것이 아님을 잘 알지 않나. 스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1년 전 그들이 왜 패배했는지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지기능장애다. 그러면서 이제 임기 1년도 안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한다. 아직 다음 대선이 4년이나 남았는데 1년 전 낙선한 그 후보가 벌써 슬금슬금 대선 판을 만들고 있다. 분열과 선동의 시작이다.

정말 많이 지겹다. 따지고 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나쁜 선거는 날조된 김대업 병풍비리 의혹 사건이 판세를 뒤흔든 2002년 대선이었다. 그때 승자와 패자의 득표 차이는 겨우 57만여표였지만 그 또한 거스를 수 없는 민심의 선택이었다. 함부로 민심을 들먹이지 마라. 지난 한 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오히려 소수의 교수님들이 뽑았다는 ‘이가난진(以假亂眞·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힌다)’ 네 글자가 훨씬 근사하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