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골프회 회원들이 경기 고양시 원당동 서울한양CC 구코스 18번홀 그린에서 클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열 기자
파라다이스골프회 회원들이 경기 고양시 원당동 서울한양CC 구코스 18번홀 그린에서 클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열 기자
경기 고양시 원당동 서울한양CC 구코스 3번홀. 내리막 파3홀의 티잉그라운드에 서니 수십년 된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골퍼들을 맞이한다. 멀리 동양화처럼 첩첩산중으로 드리워진 경기북부의 산을 바라보며 티샷을 날린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자 동반자들은 “일흔의 나이에도 정확하네. 나이스 온!”이라며 축하해준다.

2008년 창립한 ‘파라다이스 골프회’가 지난 8일 올해 마지막 정기라운드를 하는 모습이다. 이 골프회는 국내 최초 골프장인 서울CC의 고(故) 이순용 설립자 겸 초대 이사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이날 라운드를 한 남태경 회장(70·전 금성시큐리티 회장)은 “골프장의 역사를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을 회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정기라운드에 참가한 회원은 20명. 이들은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정기 라운드를 갖는다. 회원들은 티오프 한두 시간 전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남 회장 주도로 서울한양CC의 역사와 이 초대 이사장의 업적에 대해 공부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한국 최고(最古) 골프장에서 모임을 한다는 회원들의 자부심은 더욱 강해졌다.

회원들은 서울한양CC는 한국 골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이 초대 이사장은 한국골프의 대부라고 말한다. 원래 이 모임의 이름은 ‘이순용골프회’였는데 골프를 낙원에서처럼 즐기자는 뜻을 담아 지금의 ‘파라다이스 골프회’로 바꿨다.

이 초대 이사장은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45년 한국으로 돌아와 이승만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현재의 조달청장 격인 외자청장을 맡았던 1953년 11월11일 서울CC를 창립했고, 1954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능동 지역에 골프장을 개장했다. 골프라는 운동이 생소했던 시절 파격적인 행보였다.

서울CC는 이후 1972년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기증됐고 경기 고양시 한양CC로 이전해 서울한양CC로 이름을 바꿨다. 한양CC도 1964년에 개장했으니 서울한양CC는 현존하는 한국 골프장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골프장이다.

5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인 회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건강이다. 구력 20~30년가량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회원들은 이 유서 깊은 골프장에서 걸으면서 건강을 유지해 왔다. 이한구 국세신문 사장(57)은 “회원 대부분이 카트를 타지 않고 걸으면서 골프를 친다”며 “건강도 지키고 골프장의 멋진 풍경을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소나무 위로 청솔모가 뛰어다니고 까치가 날아다니는 고즈넉한 골프장을 걷는 회원들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하다.

전통을 중시하는 파라다이스 골프회는 골프 룰을 최대한 지킨다. 총무를 맡고 있는 김영일 씨(71)는 “우리 모임엔 고수가 많다”면서 “오케이를 거의 주지 않고 골프 룰을 최대한 지키면서 치고 있다”고 했다. 다른 회원들을 배려하는 모습도 강조한다. 남 회장은 “골프의 도(道)는 여유”라며 “우리 회원들은 동반자를 기다리지 않게 하면서 편안하게 공을 칠 수 있도록 배려하려고 애쓴다”고 강조했다.

회원들은 해외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함께하기도 한다. 회비를 모아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27홀 규모의 아소야마나미골프장 회원권을 사서 회원 모두에게 나눠줬다. 남 회장은 “여름에는 한국보다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 회원들이 사계절 내내 골프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을 존경하고 한국 골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모임은 우리가 유일할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에 자긍심을 느끼며 골프를 칩니다. 명문 골프장은 골퍼들의 마음과 행동이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요.”(류주영 전 서울CC 이사·73)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