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간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통상임금 기준에 대해 어제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법리, 판례와 산업 현실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법원은 정기·고정·일률적으로 주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노사합의는 무효라고 판시했다. 25년간 적용돼온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통상임금 산정기준)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노사합의가 있었다면 지금에 와서 차액을 소급청구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신의성실에 위배된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이 이처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소송전은 일단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원에 계류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160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갈등은 오히려 지금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내년 임단협 협상에선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의 지급기준이나 폐지 여부를 놓고 노사가 첨예하게 맞설 게 뻔하다. 통상임금 범위를 늘릴수록 회사는 부담이 커지고 노조는 유리해진다. 이대로라면 협상력이 강한 대기업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소급청구가 없더라도 장차 기업 부담이 무한정 커질 수도 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첫해 13조7509억원, 이듬해부터 매년 8조8663억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한다는 것이 경총의 추계다. 연장근로나 퇴직금 산정기준인 통상임금이 늘어나면서 인건비가 10~20% 안팎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경영계가 당장 크게 반발하는 이유다. 기업이 존속해야 임금도 고용도 투자도 가능하다.

통상임금 논란의 1차적 책임은 1994년부터 행정지침과 다른 판례가 쌓이는데도 이를 방관한 고용부에 있다. 이제라도 근로기준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원이 노사합의를 존중한 취지도 새겨야 한다. 기업마다 고용조건, 임금체계가 천차만별인데 법규로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노사문제를 주무르던 행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