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리의 호소 > 정홍원 국무총리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를 통해 주요 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총리의 호소 > 정홍원 국무총리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를 통해 주요 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홍원 국무총리가 28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오전 10시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리는 시간이다. 박 대통령은 통상 이 자리에서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를 이날 소집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번 주말 시작되는 유럽 순방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수석비서관회의를 생략하고 같은 시간 총리 담화문을 발표한 것은 청와대와 총리실 간 사전 교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놓고 정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민생 관련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총리의 담화문 형태로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총리실에 따르면 담화문 발표는 전날 갑자기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만으론 한계…정치권 나서달라”

정 총리가 담화문에서 던진 첫 번째 메시지는 ‘민생’이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줄곧 정치권의 정쟁을 비판하며 “민생을 챙기는 것이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정 총리는 ‘경제 살리기’와 박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를 언급하며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경제를 살리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했다. 정쟁에서 벗어나 입법에 여야가 매진해달라는 당부다. 정 총리는 국회에 계류 중인 외국인투자촉진법안, 관광진흥법안, 크루즈산업지원법안, 창업지원법안, 소득세법안, 주택법안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국회에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입법조치가 신속히 진행되지 않아 대책이 현장에서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데 이어 이날도 한국 경제를 ‘벼랑 끝에 몰린 버스’에 비유하며 국회가 경제 활성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호소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이어 총리와 부총리가 일제히 나서 국회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야당이 원내 투쟁 강화에 나선 만큼 정쟁이 계속되는 한 ‘국회 선진화법’(국회의장 직권 상정 요건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한 것) 등에 발목을 잡혀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청와대와 정부가 배수진을 치고 협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비리 개선”…대대적 사정 예고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등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 야당이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데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정 총리는 이날 담화문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정 총리는 우선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정원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정부는 국정원 댓글을 포함한 일련의 의혹에 대해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밝힐 것”이라며 “사법부의 판단과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총리의 이날 발언에 대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야권의 정치공세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분명히 전달하면서도 제기되는 의혹은 철저히 수사해 문제가 드러나면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정국 호도용 물타기”

정 총리의 담화문 발표에 대해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국정원 국방부 국가보훈처 경찰청 등 ‘3국1경’이 총체적으로 불법 대선 개입에 나서고 수사외압, 검찰총장·수사팀장 찍어내기 등 정국 파탄으로 치닫는 지금, 총리의 안이한 시국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라며 “실망스러운 정국 호도용 물타기 담화”라고 비판했다.

배 대변인은 “총체적 신관권 부정선거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대선 불복이라고 왜곡하는 세력이 최소한의 사죄도 없이 법안 및 예산안에 대한 협력만을 요구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정종태/이호기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