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통업 규제' 자충수인 걸 몰랐나
“법을 위반한 것도 없는데 왜 국회에서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계 유통업체인 트라이얼코리아 직원의 말이다. 이 회사 진현숙 대표는 15일 열리는 국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중소기업청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 올라 있다. 이유는 이 회사가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

트라이얼코리아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16개와 편의점 4개를 부산·경남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국내 대기업계열 편의점과 SSM 등에 대한 영업규제가 본격화하자 편의점 3개를 새로 열었다. 국내 업체들이 출점규제에 묶인 사이에 영역을 확장한 것. 작년 매출이 609억원으로 전년보다 19.6% 늘어났다.

지역상인들이 불매운동을 벌일 정도로 갈등이 내재해 있다면 국회에서 기업 대표를 소환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국회가 트라이얼 대표를 소환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 회사가 공격적으로 편의점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회 덕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선 ‘골목상권 보호조치’가 내려졌다. 정치권이 앞장서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SSM과 대형 유통업체는 의무 휴업과 심야영업 금지조치가 내려졌다. 대기업계열 편의점은 일정한 거리 이내에선 신규 출점을 금지시켜 웬만한 대도시에선 새로운 점포를 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트라이얼 같은 외국계 유통업체가 국내 대형 유통기업의 손발이 묶인 틈을 파고든 것이다. 트라이얼 한국법인은 중소업체로 분류돼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일본 본사는 자금이 풍부한 거대기업이다. 부산지역 상인들 사이에선 트라이얼이 SSM도 확충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가 규제받으면서 ‘무주공산’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그런 ‘마당’을 열어 준 국회가 트라이얼 대표를 ‘골목상권 침해’라며 소환하는 것은 난센스다. 문을 열어주며 ‘들어오라’고 해놓고 무단침입죄로 고소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결과가 올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규제의 칼날을 휘두른 결과다. ‘법을 지키며 열심히 일했는데 뭘 잘못했느냐’는 트라이얼의 항변에 국회의원들이 뭐라고 대답할 건지 궁금하다.

유승호 생활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