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무상보육 예산분담을 둘러싸고 정부와 반년 동안 겨뤄온 힘겨루기를 5일 끝냈다. 지방채 2000억원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키로 결정한 것이다. 오는 25일로 예상돼온 ‘양육수당 현금 지급 중단’이라는 사태는 피하게 됐지만 서울시가 서울시민을 볼모로 정부와 양보 없는 ‘치킨게임’을 벌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서울시의 지방채 발행에 대해 “국민과 서울시민을 상대로 한 쇼”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5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무상보육예산 관련 서울시 입장과 대책을 발표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5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무상보육예산 관련 서울시 입장과 대책을 발표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박 시장 “처음이자 마지막”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중앙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다릴 수 없어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며 “서울시가 지방채를 발행해 올해 자치구의 무상보육 부담까지 책임지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상보육을 위한 지방채 발행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한다”며 “지방재정을 뒤흔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더 이상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 20%인 무상보육 국고 보조율을 내년까지 20%포인트 인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에 대한 국비 지원 비율을 20%에서 40%로 높이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가 여당과 정부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0개월째 계류 중이다.

서울시가 지방채 발행을 결정함에 따라 정부의 예산 지원도 이달 중 이뤄질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아직 목적 예비비를 받지 못한 서울시와 20개 자치구에 785억원을 최대한 빨리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행정부 소관인 특별교부세 500억여원도 조만간 서울시와 자치구들에 배분될 전망이다.

○정부 “서울시에만 42% 국고 지원”

박 시장은 이날 정부에 대한 섭섭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현오석 부총리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며 “중앙 정부의 태도에 커다란 절망의 벽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현 부총리가 박 시장의 면담을 거절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올해 서울시에 지원되는 예산은 전체 무상보육 예산의 42%”라며 “서울시에만 20%의 국고를 지원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무상보육 예산에 대한 국고기준보조율은 현재 20%다. 나머지 80%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가 부담한다. 그러나 이는 기준보조율일 뿐 실제 지원되는 돈은 40%가 넘는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이석준 기재부 2차관은 “서울시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동일한 기준으로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박 시장이 실천을 해줘 보육료나 양육수당이 지원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서울시가 발행 예정인 2000억원의 지방채를 정부 공적자금으로 인수해 달라는 서울시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새누리당 “박 시장 먼저 사과해야”

새누리당은 이날 공식 성명을 내고 “지자체 중 가장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가 유일하게 추경 편성을 거부하는 몽니를 부렸다”며 “마치 대승적 결단이라도 내린 것처럼 선심을 쓰듯 지방채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비난했다. 또 “무상보육을 볼모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성태 의원은 “서울시가 부담해야 할 무상보육 예산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음에도 정부를 상대로 한 달 넘게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정쟁을 일삼았던 것”이라며 “‘정치 시장’인 박 시장의 쇼였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반박 성명을 통해 “지금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서울시의 결단을 정치적으로 시비할 게 아니라 영유아보육법 개정에 당력을 기울여 지속적 무상보육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민/김우섭/추가영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