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시아 리더가 바라본 세계 체제
1905년 5월 쓰시마해협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지휘하는 소규모 일본함대가 러시아 해군의 주력 함대를 격파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이다. 중세 이래 아시아 국가가 유럽 열강을 처음으로 격파한 사건에 아시아의 리더들은 열광했다. 한국과 만주사에는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아시아의 작은 승리(일본은 자신을 아시아의 일원으로 생각지 않았지만)가 그들은 반가웠던 것이다.

21세기 세계 중심이 미국과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제국의 폐허에서》는 20세기 역사에서 아시아가 서양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폭넓게 살펴보는 대안 역사서다. 인도 세포이 반란,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중국 신해혁명, 일본 군국주의 등을 일부는 역사 에세이 형식으로, 일부는 아시아 주요 지식인의 전기 형태로 그린다. 거시적·미시적 관점을 결합해 역사를 보기 위해서다.

인도 사상가 타고르는 “우리는 나약한 사유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오늘 일어서서 서구를 심판해야 한다”며 “우리의 집에 너희 것을 강요하고 우리 삶의 전망을 가로막는 서구를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21세기 들어 서구가 힘을 잃고 아시아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지난 세기의 주체적 의식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전통과 서구 모방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19세기부터 아시아 지식인들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좌절하며 저항했던 전통이 아시아의 내면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규정되는 서양 중심의 역사를 넘어 아시아의 시각으로 20세기의 세계를 기억하려는 시도가 반갑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