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총재라는 직책은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4일(현지시간) 취임한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사진)는 취임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성장률과 통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며 나락에 빠진 인도 경제를 구원할 ‘슈퍼 영웅’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인도 국민들에 대한 부담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라잔은 최연소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얻었다. 그는 “모든 중앙은행 총재는 환영 속에 취임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술 지팡이’는 없다”며 “많은 사람이 싫어하지만 해야 할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17%가량 하락한 루피화 가치를 어떻게 끌어올릴지다. 하지만 라잔 총재는 오는 17일로 예정된 통화정책 발표를 20일로 연기했다. 1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지켜보고 자신의 ‘첫 작품’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FOMC 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 시점이 언제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정책 강도는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대신 라잔 총재는 낙후된 인도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부터 은행 지점 개설 허가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우선 주민등록번호에 개개인의 대출 이력 및 상환 내역 정보를 연동시키도록 했다. 개인 신용정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은행 대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휴대폰 기기와 관계없이 모바일 뱅킹이 가능한 앱 제작을 목표로 한 기술위원회도 중앙은행 내에 만들었다.

과점 체제로 낙후된 은행 산업 선진화를 위해 대기업의 은행 진출도 허용된다. 이미 26개 기업이 은행 설립 신청을 했으며 심사를 거쳐 내년 1월 은행 영업 인가를 받을 전망이다. 은행들이 자유롭게 지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은행을 통해 판매하기로 한 물가연동저축 상품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오르는 만큼 더 높은 수익을 지급하는 것이다. 예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해 저축 대신 금을 비롯한 귀금속에 돈을 묻어놓는 인도 국민들의 투자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금 수입 감소에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외환시장과 증시는 ‘라잔 효과’에 환호했다. 루피화 가치는 3일 달러당 67.63루피에서 이틀 만에 달러당 66.10루피까지 올랐다. 5일 인도 증시도 2.22% 상승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